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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Jul 01. 2022

유모차는 안돼요!

지금 사는 동네에 이사를 온 건 아이들이  살,  살이었던 5년 전이다. 한동안 이삿짐에 치여 아이들이 놀고 자는 틈을 타 집을 정리하기 급급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엄마 동까뜨~"


첫째가 돈가스 타령을 했다. 삼시세끼 집에서 차려먹던 참이라 나도 슬슬 지겹던 참이었다. 쌍둥이 유모차에 아들 둘을 태우고 처음으로 집 밖을 나가봤다. 정확히는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본 것이다. 길 건너 한창 신축 아파트 공사 중이라 단지 내 놀이터나 광장에서만 놀았다. 인도도 좁아 보통 유모차의 두 배인 쌍둥이 유모차가 다니기엔 영 길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찻길을 침범해가며 상권이 있는 곳을 향했다.


분식집, 순댓국, 아귀찜, 치킨, 피자,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초밥집과 고깃집... 이것저것 뭐가 있긴 한데 영 마뜩잖았다. 밖에서 밥 먹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그마한 돈가스 가게를 발견했다.


'아~ 다행이다!!'


찰랑~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빼꼼 안을 들여다보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자리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는데 대뜸 주인인 듯싶은 분이 소리를 쳤다.


"유모차는 안 돼요!!!!"

"아........."


나는 순간 얼음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머릿속만 시끄러웠다.


'유모차가 안 된다고? 그럼 유모차를 밖에 대고 들어오라는 건가? 아니면 아예 아이들은 못 들어온다는 건가? 여기 노 키즈 존 푯말이 있었던가?'


그즈음 노 키즈 존이나 맘충이라는 단어가 한참 이슈였다. 더 이상 가게 주인의 설명이 없었고, 나도 뭔가를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가게 문을 부여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렇게 뒤돌아 서 유모차를 밀며 하염없이 걸었던 것 같다. 아닌가? 실은 어디서 무얼 먹었는지 그 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너무도 강렬한 그 순간의 기억이 나머지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나 보다.


그 이후 무수한 시간 동안 외식을 즐기지 못했다. 어쩌다 가족 모임을 하게 되면 누가 말하기도 전에 아이들 단속하기 바빴고,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즐길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엊그제 아홉 살과 일곱 살인 아들 둘만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동네 돈가스 집에 갔다. 5년 전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던 그 가게는 아니다. 최근에 새로 생긴 곳인데 유명 맛집의 분점이다. 예전 그 가게는 1년이 넘게 텅 비어 있다가 최근 화장품 가게가 들어섰다.


아들 둘 손을 잡고 그 가게를 지나는데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참 새삼스러웠다. 다른 돈가스 집에 앉아 돈가스와 모밀면을 시키고 맛있게 먹는 아들 둘을 꽤 오래 바라봤다.


'언제 이렇게 컸니?'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입 밖으로 뱉었나 보다.


"먹고 자고 하면서 컸지요~"

"하하. 불과 5년 전에 너희는 돈가스도 먹으러 못 들어갔어!"




어린이에게는 성장할 공간이 필요하다. 공공장소에서도 어린이는 마땅히 '한 명'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배제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쪽으로 어른들의 지혜를 모으는 게 옳다. 어린이는 그런 공간에서 배우며 자랄 것이다. 안전하게 자랄 공간도 필요하다.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사계절, 202쪽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 우리나라 출생률이 곤두박질친다고 뉴스에서 '다급히'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 어린이가 찾아올까? 너무 쉬운 문제다.

- 같은 책, 213쪽



아이에게 마땅히 공공장소가 열려야 하며 그 속에서 함께하면서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글이 왜 이리도 위로가 되는지...


운전을 하다 보면 스쿨존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지나칠 정도의 배려와 관심을 쏟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어쨌거나 이 아이들이 잘 자라려면 '살아남아야'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목숨으로서의 살아남음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육아로 고되고 지친 엄마들에게도 마음을 열어주는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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