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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Jul 07. 2022

상처 바이러스

2학년에 올라간 첫째는 학교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1학년 여름 방학 때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서 이미 1학년 수학 진도를 다 빼고 2학년 것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구구단은 유치원생들도 외우고 다니는 동네. 그 사이 꿋꿋하게 현행 진도와 복습 위주로 공부했던 첫째는 받아 올림과 받아 내림이 두 번 이상 나오자 문제 풀이를 틀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구구단은 5단과 2단 밖에 모른다.


며칠 전 첫째는 빨간 비가 내린 시험지를 팔랑이며 말했다.


아들: 엄마~ 선생님이 틀린 거 엄마랑 같이 풀어오래~

나: 16 더하기 17도 틀렸어?!


1번부터 틀린 아들의 시험지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 지우개 가져와서 지우고 다시 풀어봐.

아들: 33이네?! 왜 35라고 썼지?

나: 문제를 잘 읽고 천천히 풀어야지~


아들은 틀린 문제를 고치고, 나는 옆에서 '왜 이렇게 쉬운 걸 틀린 걸까?' 속으로 생각하다 뒷 장으로 넘어가서는 그만 짜증이 나서 아들을 비아냥대기에 이르렀다.


나: 맨날 동생이랑 놀기만 하더니 잘한다 잘해~


아들은 처음엔 조금 놀라는 듯하더니 별로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리고선 문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모르겠다고 온 몸으로 시위를 하며 앉아 있었다.


나: 문제 좀 잘 읽어 봐! 네가 충분히 풀 수 있는 거야! (빽!!!!)


아들은 가까스로 틀린 문제들을 다 풀어냈다. 연산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때 되면 다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남아서 재시험을 본다고 하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며 집안일과 엄마표 공부 등 많은 부분에서 내려놓음을 감행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내가 살기 위해 내린 결단이었다. 적당히, 여기까지! 선을 긋는다. 아이의 공부도 약속한 분량을 정하고 옆에서 챙겨봐 주긴 하지만, 무리한 선행을 하지도 않거니와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시간이 또 흐르고... 어젯밤 남편이 출장을 가서 아들들 사이에서 함께 잠을 청했다. 첫째가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아들: 엄마,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한테 옮겨.

나: 그래?!

아들: 응. 엄마도 그래서 나한테 상처를 주나 봐.

나: 어떤 상처를 받았는데?

아들: 엄마가 나 남아서 공부한다고 막 혼냈잖아.

나: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소환되었다. 1학년이었던 나와 은 나의 엄마. 24살에 나를 낳으셨으니 8살과 32살의 모녀다. 우리는 방에다 개다리소반 하나를 갖다 놓고 마주 앉아 있었다. 더하기인지 빼기인지 모를 문제를 풀다가 갑작스러운 꿀밤 세례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가 보였다.


나: 네 말이 맞네... 엄마가 어릴 때 덧셈 뺄셈을 잘 못해서 엄마의 엄마한테 엄청 혼났었어. 막 머리를 콩 쥐어박혀서 울기도 했지.

아들: 엄마도 그랬어?! 그럼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혼나서 나도 혼내는 거네?

나: 그러게... 엄마가 미안해. 엄마도 그때 외할머니한테 꿀밤 맞고 혼났을 때 엄청 슬프고 싫었는데... 그걸 너한테 하고 있었구나.

아들: 엄마 어쩌면 이 세상에 상처 바이러스가 있는 거 아닐까?

나: 하하. 상처 바이러스 재밌는 말이네. 그럼 엄마가 널 혼냈으니까 너도 다음에 네 아이 혼내는 거 아니야?

아들: 그럼 안되는데...

나: 그럼 엄마가 그 상처를 잘 치유해볼게. 재운이에게 더 이상 옮기지 않도록. 상처 줘서 정말 미안해.


내가 요즘 잘하는 것이 있다면, 빠르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연장자든 어린 아들이든 상관없이. 그리고 나의 불행과 아픔을 타인에게 넘기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인지 아들도 상처받은 일이 있을 때 혼자 끙끙대지 않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곧장 털어놓는다.


누구에게나 감정이 있고 상처도 있다. 그것을 표현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아들의 특정 행동이나 말이 트리거가 되어 잊고 있던 기억과 함께 나의 상처가 떠오를 것이다. 그로 인해 아들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나만의 감정 조절 방법이 필요하다.


윤홍균 교수가 쓴 <자존감 수업>에서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나온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나 화 안 났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대체 왜 늦었어?"라는 식으로 감정을 억압한다. 그러다 결국 폭발하고야 만다. 나도 이런 식이었다. "아니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야. 이 문제를 왜 틀린 거야?!" 이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며 결국은 자기와 타인 모두를 다치게 한다.

 

그렇다면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있게 드러내어 행동하지 않는다. 가만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거나 심호흡을 하는 등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행동으로 감정을 식힌다. 일부러 억누르지도 함부로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기에 백 퍼센트 감정 조절에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지나친 감정 조절은 자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저 그 순간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육아를 하며 거듭 내 속의 아이를 만난다. 그리고 거듭 보듬고 놓아주길 반복한다. 점점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아이와 마주하게 되리라 믿는다.


덧) 아이는 재시험에서 90점이 넘었고 무척 만족스러워하며 그 사실을 알렸다. 잘했어! 처음부터 100점 맞으면 무슨 재미니? 차근차근 하자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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