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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Apr 20. 2021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엄마 독립을 외치다

“850분입니다!”   

  

드디어 네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동안의 일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새로운 날의 시작이자, 엄마라는 존재가 아기와 함께 태어난 날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던 발가락, 온통 까만 눈동자, 눈을 감고도 수시로 오물거리는 작은 입. 기저귀를 처음 갈 때, 두 다리를 동시에 한 손으로 들어 올렸던 깃털 같은 가벼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살짝 들어올린다는 게 등허리까지 후욱 들려서 깜짝 놀라던 남편의 당황스러운 표정까지. 처음엔 마냥 신기했고 인형 놀이 하듯 즐거웠다.


진짜 육아는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 날부터였다. 아이는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싸기를 반복했다. 세 네시간의 수유텀이 금방 금방 돌아왔다. 우유를 먹이고 트름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도 먹고 너도 먹이며 어느 순간 먹는 것도 곤욕스럽고 귀찮을 정도로 돌아서면 먹이고 돌아서면 먹어야 했다. 누구도 건사하지 않고 오로지 잠만이 고팠다. 그러다 아이가 밤중 수유를 끊고 통잠을 자 주기 시작하니 아주 조금 살만해졌지만, 또 다른 고비가 기다렸다. 아이가 기어 다니며 여기저기 머리를 찧었고, 다리에 힘이 생기면서 잡고 일어나 물건을 떨어뜨렸다. 이유식을 만들다 아이가 우는 소리에 뛰쳐 가길 반복했다. 말을 하기 전엔 울고 떼쓰는 것으로 소통을 대신 했고, 말을 곧잘 하자 요구사항이 폭풍처럼 많아졌다.      


애 셋을 키우는 직장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아침에 눈 뜨면, 모유 수유 중인 막내를 포함해 아이들 셋이 모두 엄마 옆에서 자고 있다는 거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생생히 그려져서 안쓰러웠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제 잠자리 독립을 했지만, 가끔 팔이 너무 불편해 눈을 뜨면, 아이들이 양옆에 자석처럼 붙어 자곤 한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이라면 짜증이 올라올텐데 이제는 드문 일이 되어 버려서 마냥 귀엽다. 이런 날이 온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와 마주하는 날이!


그렇게 육아의 고비들을 한 고개 두 고개 넘어서다 보니 정말 독립의 날이 왔다. 가끔 책을 읽어달라거나 보드게임을 하자고 찾아오긴 하지만, 대체로 두 아이는 알아서 잘 논다. 심지어 아파트 아래 킥보드를 타거나 축구를 하러 단둘이 나가기도 한다. 나는 가끔 베란다 창 너머로 아이들이 잘 놀고 있는지 확인할 뿐이다. 이것이 진정 육아 황금기로구나! 물론 그동안의 육아가 그랬듯, 새로운 미션이 도착한다. 바로 ‘엄마표’ 공부!! 혼자서 육아, 살림, 아이 공부까지 모두 도맡아 나를 갈아 넣을 때가 있었다. 워킹맘이었던 내가 그 모든 걸 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결국 내가 아프고 나니 아무 소용 없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 라고 딱 정했다. 엄마가 모든 일을 책임질 수 없다. 집안일도, 육아도, 아이의 공부도. 아이가 원할 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해 주겠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나와 아이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서로를 괴롭히는 행동은 그만두기로 했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장난감이나 책이 좀 굴러다녀도, 설거지가 좀 쌓여 있어도 괜찮다. 물론, 집안일도 아이도 모두 방치하거나 방임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엄마 먼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오늘은 여기까지!’ 스스로 선을 긋는 연습을 해보자는 거다. 아이가 숙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무조건 놀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라는 것 또한 아니다.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공부와 독서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다. 아이가 숙제나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충분히 마음을 헤아려주었는데 하지 않는다면? 이후에 학교에 남아 숙제를 한다거나 선생님께 혼이 나는 상황은 아이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공부라는 것은 연계성이 가장 중요하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가 쉬워보이지만, 그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2학년, 3학년 올라갈수록 부실공사 마냥 위태로워진다. 선행에 힘쓰기보다 아이의 기초가 튼튼할 수 있게 돕기로 한다. 그 이상은 아이 스스로 하기를 원할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내적 동기가 끓어오르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새벽에 눈을 번쩍번쩍 뜨며 이렇게 읽고 또 쓰듯이. 살면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그래서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곁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 나 스스로가 행복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려고 한다.           



 엄마도 아이도 자유로워야 한다     


4차 산업 혁명시대,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는가? 나는 너무 두려웠다.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전문직일수록 더 빨리 대체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검색만 하면 다 나오는 알량한 지식을 달달 외우고 다니는 건 의미가 없다. 더욱더 사람다움이 강조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 즉 나답게 살기가 핵심이다. 특히 칼 비테의 교육법에 따르면 유년 시절의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들의 놀이를 가만히 살펴보라. “오늘은 공룡 놀이를 할 거야!”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즐겁게 몰입하며 상상력을 키운다. 친구들과 함께 놀 때는 규칙을 정하고 상황에 따라 바꾸기도 하며 배려심과 공감 능력을 키운다.     


아이는 마음껏 자유로울 의무가 있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더 힘껏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사람은 자유로울 때 잠재력을 발휘하고 행복을 느낀다. 가수 이적의 엄마이자 세 아들을 키운 여성학자 박혜란 씨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실컷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창의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보다 바닥에 펼쳐두거나 쌓아두셨다는 말씀에 그동안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책 좀 꽂아! 누가 책을 밟니?”라고 잔소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제는 아이들이 책을 징검다리 삼아 밟고도 다니고, 도미노처럼 세워두고 넘어뜨리며 놀아도 진심으로 같이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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