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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Mar 22. 2023

천국 여행하는 법

엄마!!!!!! 더워~~~~~~!!!!



  교문을 나서는 동시에 겉옷을 벗어던진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반팔을 찾았다. 20도가 훨씬 웃도는 날씨! 훤히 드러난 살갗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엄마!

밖에 나가서 팽이 놀이 할래요~



  아직 형이 오지 않아 상대는 엄마가 되어줘야 할 게 뻔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아, 날 좋다♡

여행 가고 싶네~!



  한창 팽이 놀이를 하던 중 나무 그늘 사이로 슬몃 스미는 따사로운 햇살에 절로 여행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싫어! 난 여기가 좋아~~~







  팽이 15개 중에 무려 13개는 어제 저녁 당근 마켓에서 캐왔다. 팽이판까지 세트로 무려 2만원이라는 아름다운 가격에. 한참 유행할 때는 우리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뒤늦게 친구네 집에 갔다가 팽이 돌리는 맛을 알았다.



  어제 저녁만 해도 제법 쌀쌀해서 밖에 나와 팽이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서 돌리기엔 소리도 진동도 너무 컸다.



아... 내일이 얼른 되면 좋겠다.



  아들 둘은 어제밤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그러니 여행이 가당키나 한가.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릴 뿐이다. 팽이는 끝없이 돌고 돈다. 벌써 1시간째 지치지도 않고. 이제 엄마는 좀 쉬어야겠다고 하니 흔쾌히 놓아준다. 혼자서 팽이 2개를 연달아 돌리기 시작했다. 형이랑 붙으려면 연습을 해야 한다나?



  팽이 하나에 희망과

  팽이 하나에 집념과

  팽이 하나에 사랑을 담아

  하하ㅡ



  여행보다 여기가 좋다는 아들의 단호함에 생각한다. 그래,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 천국이지 무얼. 그걸 아는 네가 참 현명하구나 싶다.


  가족과 멋진 곳으로 가는 여행도 물론 좋지만, 지금 이 순간 충분히 유롭고 복하다면!

  이것이 진짜 여행이다. 그것도 무려 천국 여행 :)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 마르셀 푸르스트



    일상을 늘 새로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쳇바퀴 같은 하루도 살 떨리게 두근거리겠지? 지금 당장 실천해보기로 했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겨울눈에서 어느새 연둣빛 싹이 올라왔네!

팝콘 매화와 탐스러운 목련이 활짝 웃는다.

좋은 햇살♡

여기저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한결 높아졌다.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 두꺼운 외투 속에 파묻혀 있다가 팔을 드러내고 가볍게 차려입으니 제법길쭉하다.



  변하는 줄 몰랐다. 자라는 줄 몰랐다. 그렇게 성큼 봄이 왔다.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는 내가 꼭 이방인 같았지만 분명 설레었다. 흡사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하여 카메라 뷰파인더 속에 최대한 많은 것을 눌러 담듯이.



  '가족 여행'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들과 팽이 데이트하며 일상 속 천국 여행이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재미로 오늘의 글은 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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