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사언니 정예슬 Mar 14. 2023

이해할 수 있는가?


  "이거~ 자기 좋아하는 거지?"



  남편도 나도 어느 순간 기념일마다 무심히 넘어가는 게 일상이 되어 올해도 별 기대가 없었다. 다만, 아들들에게는 사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앉혀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오늘 엄마한테 사탕 주는 날이야. 화이트 데이거든. 블라블라..."


  둘째는 총총 거리며 부엌으로 가 간식 바구니에서 막대 사탕 하나를 꺼내왔다.


  "엄마는 이거 말고 에너지바가 더 좋아. 너희 용돈으로 사주는 사탕이면 더 좋고."

  "그럼 내가 마트 다녀올게. 우리 엄마한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아까부터 하루 공부는 하지도 않고 뭐 재밌는 거 없나 기웃거리던 첫째는 이 때다 싶어 덥석 물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속으로 무얼 사 올지 기대하며 덧붙였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걸로! 맛있는 걸로 사다죠~"



둘째가 내민 막대사탕과 첫째가 사온 비타민 사탕



  첫째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사탕을 내밀었다.


  "아, 이게 맛있는 사탕이구나?"

  "응! 같이 나눠 먹을 수도 있고~"


  음... 아들은 아무래도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사 온 것 같다. 앞으로는 내가 먹고 싶은 걸 콕! 집어서 말해줘야겠다며 뒤늦은 반성을 했다.




  다시 처음으로.

  오늘따라 집에 빨리 들어온다는 남편 손에 금박 초콜릿이 있었다. 한 알 한 알 까먹을 수 있는. 어째 첫째가 막 보여준 의기양양함과 비슷한 말투와 표정으로 "자기 좋아하는거지?"라고 물어온다.


  이 초콜릿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돌아가신 아빠가 나의 10대 시절, 시험 기간이면 꼭 사다 놓으셨던 거다. 몇 알을 호주머니에 넣어 갔다가 시험 사이 사이 쉬는 시간에 꺼내 먹었다. 배고픔도 달래고 머리도 잘 돌아가게?!


  내 돈으로 사 먹은 적은 없는데 아빠가 아닌 남편이 사주니 기분이 남달랐다. 무엇보다 기념일에 무딘 남편 손에 무언가 들려있다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이었다.




  어제 <마흔, 체력이 능력>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늘어난다. 하나하나 어린아이 가르치는 심정으로 남편을 최선을 다해 가르치자." - 194쪽


  비단 육아나 가사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남편이 기념일을 챙기고 편지를 쓰게 하란다. 그래야 아들도 아빠를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나는 애써 남편에게 가르친 적이 있던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하니 우리 남편은 소개팅 이후 사귀자는 말을 하며 빼빼로를 건넬 때도(그날이 빼빼로 데이였다) 그 흔한 편지한 줄 쓸 줄 몰랐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빼빼로 뒷면이 허전한데 뭐 좀 써주세요."


  라며 편지를 종용했던 나인데. 이제는 굳이... 기대가 없다기보다, 그냥 그런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산다.


  대신 그가 잘하는 점을 보며 사는 거다. 남편이라고 내가 백 프로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산다. 어느덧 9년을 꽉 채우고 10년 차에 접어든 부부가 되어.

  



매거진의 이전글 휴직맘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