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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Mar 28. 2023

보쌈 남편 짜장면 아내

  첫째가 태어나고 모유 수유로 꽤나 애를 먹었다. 조리원에서도 몇 번이나 악 소리 나게 마사지를 받았다.


  "어유. 참 젖이네~"


  여러 갈래로 젖이 분수처럼 솟았고 얼굴까지 젖었다. 부원장님의 칭찬에 살다 살다 별 걸로 다 으쓱해지네 싶어  자신이 우스웠다.


  정작 이 좋다는 젖을 아이는 먹지 못했다. 아직 빠는 힘이 약해서 그렇단다. 새벽에 낑낑대며 나와 독대하느니 그냥 푹 자라고 분유 수유를 해주십사 부탁드렸다. 대신 나는 유축이라는 것을 했다.


  초유가 중요하다는 말에 유축을 하여 모유팩에 차곡차곡 모았다. 유축기 사용도 서툴러서 흘려 버린 것도 태반이다. 어쨌거나 조금이지만 우유를 모으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그 무렵 최고의 과제는 아이를 잘 먹이는 것이었기에 엄마들도 도넛 방석을 들고 때 되면 삼삼오오 식탁에 모였다. 미역국이 를 넘어 저녁 간식으로도 나왔다. 후루룩ㅡ


  모유촉진차도 수시로 마셨다. 모든 삶의 중심이 모유 수유와 유축이었다. 젖이 좀 찬 것 같군. 흘러 내리기 전에 짜든지 먹이든지.


  "유축 잘 되세요? 몇 ml 나오세요? 유축기는 뭐 쓰세요? 애는 잘 먹어요?"


  조리원 천국을 마치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한 달 조금 넘게 몸을 풀었다. 남편도 신혼집이 그리 멀지 않았지만 친정에서 출퇴근을 하며 함께 지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점심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를 먹이고 부엌으로 나왔다.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기로 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열심히 먹고 있는 아이를 떼어낼 수는 없는 노릇. 아이를 재우고 주방으로 갔다.


  "왔어? 00이 자?"

  "......"


  순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게 뭐야... 내 짜장면은...."


  짜장면이 없었다. 아니 있긴 했는데 벌써 누가 손을 댄 건지 먹다만 흔적이 역력했다. 엄마는 식사 약속이 있어서 남동생과 남편이 종류별로 먹게 이것저것 시켰는데, 내 것은 덜어놓지도 않고 먹기 바빴던 거다.


  "뭘 우리 사이에~"


  맞다. 우리 사이에 침 묻히고 먹는 게 대수랴. 침도 먹는 판에. 그런데 너무 속상했다. 모유 수유하고 나와서 식어빠진 음식을 먹는 것도 속상한데 이리저리 갈라진 음식 길이 내 마음을 갈갈이 휘저었다.


  "으아앙 내 짜장면.... 으허엉..."


  한참을 울었다. 애기 낳고 추노꼴을 하고 수면 잠옷 바람에 울고 서 있는 내가 한심했다. 우는 내가 싫어서 또 울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신 엄마가 남편과 동생을 나무랐다. 애기 보느라 안그래도 지치고 힘든 사람을 제일 먼저 챙겨줘도 모자랄 판에 자기 몫도 제대로 없이 얼마나 속상하겠냐고 편을 들어주시며...





“보쌈 남겨놨는데 라면 끓인 남편, 기분 상할 일?” 인증한 주부에 비난 봇물



  엊그제 인터넷 신문 댓글 1위를 달렸던 기사다. 보쌈 남겨놨는데 안 먹고 라면 끓인다며, 이게 왜 기번 나쁜지 모르겠다는 아내에 대한 비난이 솟구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래 첨부한 사진을 보는 순간  날의 기억떠올랐던 다. 보쌈과 잠시 마주 섰다 터벅터벅 라면을 끓이러 갔을 남편. 그 모습이 짜장면 앞에 서 있던 나와 겹쳐보였다.



동아일보 중에서



  같이 식사를 시작했더라면 따로 그릇을 덜지 않고 덩달아 허겁지겁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랬을 거다. 그런데 퇴근 후 이 모습을 봤더라면...


  '뭐야? 내가 잔반 처리반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입맛이 싹 사라질 것이다.


 

  보쌈과 짜장면은 그저 보이는 결과물일 뿐, 그 신문 기사 속 남편과 내가 원했던 것은 음식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 아니 아주 작은 배려 아니었을까?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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