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만 멀대 같고 약해 빠졌네. 쯧쯧"
고1 생물 선생님이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려
선풍기 바람 아래에서 목도리를 두르고서
식은땀을 연신 흘려대고 있었다.
환절기만 되면 감기에 걸린다.
한여름에도 감기에 걸리니
한겨울은 당연한 일이고
사계절 내내 감기를 달고 다닌 셈이다.
보다 못한 엄마는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오셨다.
그걸 먹으니 확실히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대신 고2에 내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
수학여행에 가려니 맞는 옷이 없어서
청바지를 새로 사는데...
헉. 허리 치수를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다.
기억에서 세차게 지워버리고 싶었던 터라 그게 맞는 숫자인지도 가물거린다.
어쨌거나 엄청난 몸무게와 감기몸살을 바꿨다.
스트레스 받아하는 내게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대학교 가면 살 빠져~~"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대학교에 가서 부어라 마셔라 느는 게 술 살이고
제주도 돼지고기랑 빙수는 왜 그렇게 맛나는지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싶게 밤새도록 먹어제꼈다.
가정의 대소사로 살은 점점 빠졌고
노량진에 있으면서 47kg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위염은 늘 달고 살았고
십이지장궤양,
알러지성 비염 등등
새로운 질병이 돌아가며 찾아왔다.
학교에 발령 난 후
인후염이라는 직업병을 달고 살았고
학기 초만 되면 목구멍이 찢어지게 아팠다.
감기에서 시작했는데 직업병에 이르렀다.
둘째 임신 7개월 무렵 교통사고가 났을 때가
문득 떠오른다.
처음으로 장기 입원 환자가 되어
걱정 인형을 같이 만들기도 했다.
병실에 다들 누워만 있어야 하는
고위험 임산부들만 있어서
서로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누워서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두렵고 무서웠던 순간이고
첫째가 보고 싶어 질질 짜기도 많이 짰다.
돌이켜보면 참 힘들고 아픈 순간들이 많았다.
"가만히 웅크리는 시간은 인생에서 필요하다.
혼자 조용히 품어내는 힘이 없으면
마음의 연륜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임경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어쩌면 고통과 아픔에 몸부림치는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고꾸라질만큼 힘든일이었나하면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_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토요일 밤부터 극심히 아픈 머리와
끊임없이 꿀떡 거리며 넘어가는 콧물도
그걸 가만히 지켜보며
겨우 무언가를 해낼 수 밖에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이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 여기니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
지나고보면 별 거 아니라 여기니
또 그리 아프지만은 않다.
그래, 이런 게 인생이지.
아파도 즐거워도 슬퍼도 편안해도
그저 매일 매일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