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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Dec 31. 2023

못 들은 걸로 할게

 무기력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몸살감기도 마찬가지다. 분명 어제까진 괜찮았는데 오늘은 폭삭 주저앉는다. 왜 런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서 더 힘들다. 몸도 마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다.


  그럴 때 그 남자를 잡고 얘기하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성적인 남자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거나 원인을 파악해서 제거하려 들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기어코 그녀는 그 남자 앞에 가서 한숨을 내뱉듯 소리내고야 만다.

  "아... 나 학교 괜히 그만뒀나 봐... n잡러 너무 힘들다..."





"못 들은 걸로 할게."




  밑도 끝도 없이 내던지는 그녀의 . 남자는 익숙한 듯 고심한다. 이내 방어막을 단어를 골라 깔끔하게 방어벽을 쳤다.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미리 싸움을 방지하자는 차원이다. 그 여자는 그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만 본다. 이해하는데 속상함을 감출 길은 없다. 물론 대책 없이 던지는 말버릇이 잘한 짓은 아닌 걸 안다. 하지만 그냥 답답하고 대화가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남자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다. 시험이 있어서, 평가가 있어서, 팀에 누군가가 싸질러놓은 똥을 치워야 해서 등등등... 아마도 그렇게 서로가 대화를 할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대체 그녀는 남편이랑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을 들춰낸 걸까. 그냥 바쁘고 아픈 나날을 위로받고 싶어서일 거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덤덤한 위로 한 마디가 고팠는데 그 남자는 그게 참 어려운 거다.





그거 내가 해줄게


  사실 이 이야기는 몇 달 전 퇴사 후 한 달가량 지났을 때 그 남자와 그 여자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그 때 그녀는 참 많이 서운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 어이없지만 고맙기도 하다. 그 남자가 그녀를 비난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며 고르고 고른 말이 아닐까 싶은 까닭이다.


  원래 그 남자 성격대로라면 무책임하다며 비난하기 바빴을 거다. 자신은 결코 생각없이 어떤 일을 벌리지도 않을 뿐더러, 결정을 했다면 쪽팔려서라도 후회한다는 말은 입에 담지도 못했을거라며.  들은 걸로 한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그것으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계속해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당장 큰 성과를 바라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고 지금은 아이들이 어리다는 말도... 맞다.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섭섭할 이유가 없다. 이미 가족을 위해 충분히 희생하고 있는 건 그 남자니까.


  까짓것 그 칭찬과 위로는 스스로 해주면 될 일이다.


  "정예슬, 충분히 잘하고 있어."


  10번이고 100번이고 해줄 수 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칭찬 샤워를 쏟아부으며 2023년 마지막날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이것으로 정했.


  모두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새해에도 우리 신나게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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