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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Dec 24. 2023

하고 싶은 거 해!

 하고 싶은 거 많은 그녀는 연애할 때부터 바빴다. 학교에 출근을 하면서 야간에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다녔고 주말에는 근처 교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플룻을 불었다. 평일 주 2~3회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어쩌다 추가로 프로젝트 회의를 갔는데 남는 1회에는 아카펠라 동호회에 참석했다.


 남자와 연애를 시작한 첫 달부터 공연이 줄줄이 있었는데 한군데도 초대하지 않았다. 여자는 서쪽 남자는 남동쪽 세상에 살아 사는 곳이 멀기도 했거니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을 앞에 앉혀두고 무언가를 한다는 게 영 편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시절부터 그 여자는 몸을 혹사하는? 버릇이 있었다. 반면 그 남자는 달랐다. 주말에는 세 끼 밥이나 여행보다 집에서 단잠을 자는 걸 좋아했고 특별히 무언가에 욕심을 보이거나 호기심을 가지는 법이 없었다.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많지 않은 집돌이.


 그녀는 연신 답답했고 두 아들을 키우며 급기야 우울증을 앓았다. 어디든 쏘다녀야하는데 아들 둘을 데리고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백 일에 10kg을 찍어버리는 아들 둘. 첫째가 100일이 갓 지날 무렵 신혼집에서 혼자 아이를 보다 너무 답답해서 아기띠를 하고 콧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울면서 돌아온 적도 있다.


"으어엉.. 어깨가 떨어져 나갈거 같아...."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 아들 둘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그녀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성인 독서모임과 아이들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책도 쓰고 강의도 한다.


"나 학교 그만 둘래."


 아이도 키우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하며 그냥 이렇게 지내고 싶었다. 그 남자의 벌이가 아주 어마어마해서도 아니고 그녀의 벌이가 아주 드라마틱하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 아이들 학원 뺑뺑이 돌려가며 남의 손에 맡기면서까지 출근이란 것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그리고 그리던 그런 학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더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잃는 것보다 더 많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 말하는 것들은 모두 명퇴 후에도 가능한 일이야. 아직 때가 아니야. 나를 설득하지 못했어."


 그 남자는 늘 그녀에게 말했다. 자기를 설득하라고. 그 남자를 설득하려면 온갖 통계 자료와 앞뒤 정황을 따진 플랜 A, B가 있어야 한다. NFP 그녀가 STJ 그를 설득하려면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치고 힘들었던 그녀는 말없이 울다가 휴직을 택했다.


 육아휴직을 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쉬었다. 그냥 쉬고 또 쉬다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책도 실컷 읽고 아들들 수영 다니는 걸 보며 수영복도 샀다. 그 여름 서이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제법 잘 지냈던 그녀다.


 "그냥 그만 두고 하고 싶은 거 해!!"


 서이초 사건 이후 며칠을 울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는데 그 남자가 말했다.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계획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남자가 엄청난 결심을 한 거다. 물론 최악의 상황까지 모두 준비해 두었더라만...


 대책없이 나온 그녀는 뒤늦은 대책을 세우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터무니없이 긍정적이고 회복 탄력성이 큰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그냥 하루하루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강의가 들어오거나 책 계약을 하면 벼락치기 공부하듯 몰아치는 인생이지만 ENFP 그녀는 꽤 즐기고 있다. ISTJ 남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100% 준비되지 않은 것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 그저 놀라워할 뿐이다.


 "곧 독서인문지도사 자격증 강의 시작 아니야? 준비 다 했어?"


 "머릿속에 다 있고 자료도 다 있는데... ppt가 아직..."


 "뭐어??!!!??"


 그는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애초에 오픈과 동시에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그녀는 되려 그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완벽이란 어디 있냐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둘은 티격태격 알콩달콩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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