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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Jan 08. 2024

드디어 하나된 우리!

소비도 계획적인 그 남자


 연애할 때도 같이 통장이란 걸 써본 적이 없다.

적당히 나눠서 냈던 것 같다. 대체로 그 남자가 먼저 내면 다음 건은 그 여자가 계산하는 식이었다.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기념일에도 그 남자는 받기를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알려주길 바랐다. 소비도 무척 계획적인 사람이었기에 무엇하나 허투루 구매하질 않았다. 충동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ISTJ의 정석 그 자체였다.


 뭔가 낭만이라고는 없는 그 남자가 가끔 재미없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로 인한 재미가 아닌 유쾌한 대화 속에 흘러넘치는 그 남자의 명석함이 좋았다. 자신을 치장하거나 사치품으로 존재를 뽐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하는 자부심 또한 좋았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남동생과 정반대인 그녀는 은연중에 자신과 비슷한 그가 좋았던 것도 같다. 물론 그는 그녀보다 더 심했지만?! 브랜드라고는 1도 몰랐지만 그런 것에 괘념치 않았다.


 어느날 연수원에 다녀온 남동생이 말했다.

 "다들 돈이 넘쳐나나봐. 사회 초년생인데 집이 부자인가? 막 지방시를 입고..."

 부러운 듯 말하는 남동생을 보고 남편이 한 마디 했다.

 "뭔 시?"

 "지방시요."

 "내 옷은 서울 특별시에서 샀다~ 그러지~"

 친정 엄마부터 온 가족이 다 뒤집어졌다. 지방시를 듣고 특별시를 떠올릴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실 연애할 때는 몰랐다. 그토록 소비에 엄격한 사람인지. 물론 근검절약을 하는 남자라고 아예 옷을 사지 않는 건 아니다. 샐러리맨 답게 와이셔츠는 매일 입어야하니 해마다 알아서 셔츠를 구매한다. 미리미리 70~80% 할인된 가격으로 서너 벌 준비하여 편안하게 입고 bye.


 미용실은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곳에서 매달 커트와 염색까지 2만원대로 끝. 아무리 짧은 머리라지만 이런 가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몇 년째 단골이라 사장님도 단골 가격으로 계속 해주신 까닭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니 이런 그 남자가 준비했던 프로포즈는 그 남자 인생 최고 이벤트가 아니었나 싶다. 초고층 통유리 뷰에 단 둘을 위한 만찬이 차려진 룸. 천장에 풍선이 가득했고 한 가운데 엔틱 식탁엔 고급스런 음식이 한 상 가득이었다. 갑자기 영상 편지가 흘러나왔고 영상이 끝나자 라이브 통기타 연주와 함께 청혼가가 이어졌다.


 영원히 박제되어 두 아들과 그녀는 그 남자의 연가를 종종 찾아본다.


"난 결혼 못할 거 같아요."


"왜?"


"노래 부르는 거 부끄러워요."


"하하하하하하. 노래 꼭 안 불러도 되~~~~"


"아빠도 불렀고, 외삼촌도 불렀잖아요..."


 남동생이 결혼할 때 축가를 부르는 걸 보고 두 아들은 즐기지 못했다. 하하. 아빠와 외삼촌이 결혼 전 그리고 결혼 당일 노래를 불렀으니 꽤 심각해진 것이다.




내 집마련 성공


 어쨌거나 돈에 있어서만큼 그 남자는 엄격했고 철저했다. 신혼 때는 생활비 통장을 만들었다. 월급에서 이만큼 적금을 넣고 이만큼은 생활비 통장에 넣자고 말했던 그였다. 물론 생활비 금액 외에 적금이나 용돈은 터치하지 않았다. 자기는 이렇게 한다고 말해줬을 뿐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바뀌기 시작했다. 그냥 스쳐지나가던 월급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관리비, 인터넷, 핸드폰 비용 할인 받는 신용카드 하나를 제외한 모든 카드를 없애고 체크 카드와 현금을 쓰기 시작했다.


 목표도 생겼다. 친정 근처 아파트 매매하기!! 그 때는 대출을 받으면 큰 일 나는줄 알아서 그냥 모으기만 했다. 시댁의 도움이 있었지만 서울에 집 한채 갖기란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은 27평 복도식 마련에 성공했고 이후 33평 화장실 2개인 집으로 평수를 늘렸다. 계속 돈이 모이는 느낌이 좋았다.


 2023년 9월. 상황이 바뀌었다. 그간 무급 휴직도 있었지만 언제고 다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퇴사 2개월 후 돈이 모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번 만큼 나가는 느낌?계속 까먹는 느낌? 친정 엄마는 사업 초기비용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지만 점점 불안해졌다.


 교사는 퇴직금이 없다. 면직이라 그렇기도 하디만 그동안 모아둔 공무원 연금을 일시금으로 받거나 일부만 받고 노후 연금으로 돌리는 방법 밖엔....그마저도 5년 안에 결정하면 된다고 하여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 그녀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당장 새고 있는 돈이 있는걸까?

 실거주 1주택만으로 괜찮은 걸까?

 뭐부터 해야하지?


 그렇게 그 여자는 재테크와 노후 준비를 위한 유튜브 영상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외벌이에 대출금을 다 갚았다는 얘기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결론은 나왔다.


 근로 소득을 우습게 보지 말라.

 시스템을 만들어라.

 부부 돈을 합쳐라.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했다. 부부가 합칠 계좌는 어느 은행이 좋을지, 용돈은 각자 얼마로 할 지 등등. 남편의 추천으로 부부 통장은 개설 당시 1억까지 연 3.5% 이자를 주는 사이다통장으로 결정했다. 최근 3.3으로 낮아지긴 했지만 현재까지도 가장 괜찮은 이율이다. 그 여자는 국민은행이 아닌 사이다 체크카드를 발급받아 사용 중이다.


 12월까지는 과도기였고, 새해 1월부터는 수중에 있는 모든 돈(70만원까지 7%, 30만원까지 5%등의 통장에 돈을 따로 넣어둔 것 제외)을 사이다 통장에 합치기로 했다. 생활비로 얼마가 나가고 새는 돈은 어디있는지 한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간 기록을 좋아하지만 가계부 쓰기에는 소홀했던 나인데 조금씩 눈에  보이니 안심이 되었다.






 그 여자도 부부통장에 일조하기 위해 3월부터는 제대로 된 근로소득 창출을 꿈꾸고 있다. 목표를 세우고 준비를 하니 한결 몸도 마음도 가볍다. 극 p인 그녀에게 극 j인 그 남자가 있어 가끔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엄마랑 떡볶이 먹는 게 좋아. 아빠는 어묵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안 좋아해서 떡만 먹거든."


 엊그제 그 남자가 아이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했던 말이다. 맞다. 달라서 좋은 점도 이렇게나 많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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