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사언니 정예슬 Jul 16. 2024

내 생애 첫 송공패

 마지막 담임을 할 때 동학년에 참 다정한 언니 같은 선생님이 계셨다. 정말 친언니였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표현할만큼 햇살처럼 따스한 분이셨다. 늘 손을 잡아주셨고 등을 토닥여주시며 마음을 내어주셨다. 딱 한 해 함께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고 다음 해에 나는 육아 휴직을, 그 선생님은 전근을 가셨다. 걸어서 15분 거리인 지척에 살고 계셨지만 당연히 출근 중이실 거라 생각해서 만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3월 1일자로 명예퇴직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샘!!! 그럼 당장 만나야죠~~~"


때마침 초복이었고 유명한 동네 삼계탕집 오픈런을 시도했다. 직장 다닐 때는 꿈도 못 꾸는 시간에 맛집을 찾아 나선 기분이 꽤 묘했다. 오픈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게 도착했지만 이미 홀의 90%는 채워져있었다.


"와... 장사는 이렇게 해야하는구나!"


감탄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부스럭 부스럭 뭔가를 꺼내셨다.


'아... 편지...!'


 동학년으로 한 해를 함께 보내며 특별한 날이면 늘, 손수 그려 넣은 꽃 그림과 함께 손편지를 써주셨던 게 떠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편지를 쓰시다니 참 따뜻한 분이라 생각하며 감사히 편지를 건네 받았다.


 그런데!!! 이건... 그냥 편지가 아니었다. 보자마자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송공패
 
                                       정예슬


교감 선생님께서는 남다른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리 초등 교육에 정진하시어
훌륭한 인재를 길러 내셨습니다.

이제 명예로운 퇴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하시는
정예슬 교감 선생님께
그 큰 공을 기리고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2024. 7. 15.




 평교사로 명예퇴직을 하면 교감 선생님으로 불러주고 퇴임식을 한다. 그러나 나는 평교사 의원면직, 그것도 육휴 중이라 전화 한 통, 서류 한 장으로 그간의 교사 생활을 청산했다.


 어느새 의원면직을 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땐 몰랐다. 조금 허무했고 많이 기대되어서 그 뒤에 남아 있던 마음들을 챙기지 못했다. 이제와 송공패를 마주하니 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쳐지나갔다. 제주도에서의 교육대학교 시절, 노량진에서의 임용고시 준비 시절, 서울에서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와 스쳐간 인연들, 석사 학위를 받으려 퇴근 후 다녔던 대학원, 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며 사이사이 학교를 다녔던 일들까지...



 요근래,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스스로가 성에 차지 않아서 게으름을 피운다고 생각했다.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있으면서... 아직은 손이 많이 필요한 아들 둘 독점 육아를 하느라, 혹은 뭘 좀 해보려하면 아픈 몸뚱이를 데리고 사느라,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시간들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가만히 흘려보내지 못했다.



 선생님께 이랬고 저랬고 그랬어요_ 털어놓다보니 꽁꽁 감춰두었던 마음들이 보였다. 선배님이(이젠 가드너 언니) 말씀하셨다.



"모든 건 흐름이 있어.

흘러가는대로 살아야 해."



 다시,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눈 앞의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가의 들꽃과 살랑거리는 풀, 파란 하늘에 마구 감탄을 내질러주셔서 나도 한껏 들떠 찰나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었다.



 이번주 생일주간인데 가장 멋진 선물을 이미 받아버려서 마음 붕붕, 충만 그 자체♡♡ 감사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6번째 책 계약서 도장 쿵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