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없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 정재찬

by 정예슬


오늘의 책은 시 소믈리에 정재찬 교수님의 인문 에세이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분한 가운데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위트 가득한 입말들이 시선을 붙잡습니다.

밥벌이, 돌봄, 배움, 사랑, 관계, 건강, 소유라는 일곱 개의 장에,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_ 생업, 노동, 아이, 부모, 몸, 마음, 교육, 공부, 열애, 동행, 인사이더, 아웃사이더, 가진 것, 잃은 것_에 대한 열네 번의 시 강의를 담은 책입니다.

너를 돌보며 내가 자랐단다
바람에 깎여 얻게 된 깊이
얼마나 더 가져야 채워질까

차례의 소제목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기대만큼 역시나 좋았습니다.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문제없습니다.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은 날 펼쳐보기 정말 좋은 책입니다.

오후 두 시.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의 한가운데서 노래를 흥얼거리듯 시를 읊조리며 주어진 '지금'을 만끽합니다. 여러 시들 중 마음에 와닿은 시 한 편을 공유해봅니다.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ㅡ <활주로가 있는 밤>, (문학동네, 1991)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 번을 안 하셨던 저의 엄마는, 전교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었을 때도 그 흔한 칭찬 한 번을 안 해주셨습니다. 성인이 된 저는 가끔 엄마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 좀 하지 그랬냐고 철없이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제게 신신당부했던 것이 있습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친구들이 있으면 꼭 챙겨주라고 소풍 갈 때마다 넘치도록 싸갔던 커다란 김밥 도시락. 아침을 못 먹고 오는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나눠먹으라고 호일에 겹겹이 넣어주신 찌짐(부추전). 나는 아침도 먹고 간식도 먹어 뚱뚱이가 되었다며 또 철없는 말을 내뱉었네요.

"뒤돌아보면 보이고 뒤돌아보아야만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게 해 준 인생의 배후 말입니다. (...) 어쩌면 그렇게도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지요. 그런데도 현재의 행복에 이르게 된 그 과정을 보게 되면, 지금에서 되돌아본즉 그 굽이굽이가 다 필연처럼, 기적처럼 보이는 겁니다."(291p)

엄마가 저에게 주신 것들은 알량한 지식을 눌러 담는 것보다 더 큰 것들이었음을, 20년이 흐르고서야 깨닫습니다. 에둘러간 곡선에 덩달아 감사함을 느끼는,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고 가치로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학교로 돌아가 조금은 달라진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것 같습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들에 더 자주, 더 많이 말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어른으로 서고 싶습니다. 앞이 아니라 곁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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