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방문기 (1)

원산대반점과 2.28

by 서초패왕


이번 해외 시찰로, 2009년 친구들이랑 방문한 이래 근 15년만에 대만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와 가장 다른 점은 이번 방문에서의 숙소가 원산대반점이라는 것이다.


원산대반점은 ‘중화민국을 방문하는 외빈의 숙소가 필요하다’는 장개석 총통의 부인 송미령 여사의 제안으로 건립되었다. 1952년 건립 후 수십 년간은 외빈 숙소로만 이용되었으나, 현재는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어있다.


중화민국의 외교 역사를 상징하는 호텔답게, 로비 2층에는 52년 이래 호텔을 방문한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한국인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은 1966년 국빈방문으로 대만을 찾은 박정희·육영수 대통령 부부와 함께 호텔 로비를 내려오는 장개석 총통의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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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는 위급 상황을 대비해, 지하에 외부로 길게 이어지는 대피로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얼마나 깊게 만들어 놨는지 핵이 터져도 안전할 듯 했다. 자유진영의 외빈과 장개석 총통이 자주 방문하는 호텔인 만큼, 냉전시기 중국 공산당을 비롯한 상대진영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을 테니, 대피로가 꼭 필요했을 것 같긴 하다. 장개석 총통이 얼마나 중국 공산당의 공격에 학을 뗐으면, 호텔 지하에까지 이렇게 튼튼한 대피로를 만들어 놓았을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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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는 금룡이라는 중식당이 있는데, 대만을 대표하는 호텔의 중식당답게 요리도 수준도 높고, 중국인이 선호하는 홍색과 금색으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일품이다. 또한 호텔 위치가 고도가 높은 산턱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대북시의 야경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첫날, 예류 지질공원과 지우펀을 방문하였다. 예류지질공원은 기암괴석으로 유명하고, 지우펀은 만 뉴웨이브 영화를 대표하는 허우샤오시엔 감동의 <비전성시>의 촬영지이자, 지브리社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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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전성시는 대만 현대사의 비극인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1940년대 말~50년대 초 대만의 극심한 혼란상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도 잘 녹아들어 있다.


포르투갈의 지배·정성공의 통치·일본의 식민 시기 등을 거쳐, 중국 본토와는 다른 문화와 역사관을 공유하던 대만 섬에, 일본 패망 후 갑자기 본토의 국민정부군이 들어왔다. 국민정부의 대만섬과 섬주민들에 대한 몰이해는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반정부 봉기가 일어났다. 놀란 국민정부는 비무장 시민을 학살했는데, 이 학살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정부가 인정한 공식적인 사망자 수만 28,000명에, 실종자 수는 12만 명에 육박한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수백만 명의 국민당군이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륙을 잃고 대만섬으로 건너왔다. 2.28 사건의 아픔이 여전한 상태에서, 국부천대와 함께 시작된 계엄령은 38년간 이어졌고,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할 시간은 계속해서 유예된 것이다.


내성인이라고 불리는 대만 출신인들이 대륙 기반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주장하는 양안 통일론에 부정적인 것은 역사를 반추해보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들에게 국민당은 침략자·학살자에 다름 아닌 것이며, 국민당과 공산당의 통일논의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2009년 아무것도 모르고 놀러왔을 때의 지우펀은 그저 아기자기한 관광지였는데, 여러 경험과 지식이 쌓인 지금 다시 바라보니, 어딘가 한이 서려있고 울적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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