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사무처 당직자는 아무래도 봉사활동 갈 일이 많다. 대학 입시용 1318 봉사 시간 확보할 때보다 많다. 겨울의 김장봉사·연탄봉사, 여름에는 수해 복구 봉사 등등. 보통 국회의원 등 지도부와 갈때가 많다. 언론으로 부터 보여주기식 봉사가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매년 남도를 중심으로 수해가 끊이지 않는다. 아침 일찍 여의도를 출발한 버스는 낮잠을 한숨 자는 동안 남도에 당도했다. 국회의원에 사무처 당직자에 지역 당원까지 봉사인원이 500명에 육박한다. 이 인원이 조를 짜서 하나의 농민가정이 운영하는 비밀하우스에 배치된다.
우리 조가 배치된 농민가족은 수박과 호박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가족이다. 도착하니, 사장님은 영 표정이 좋지 않다. 다 자라서 수확만 하면 되는 커다란 호박과 달아보이는 수박이 다 썩어서 물에 둥둥 떠다닌다. 오늘의 봉사는 이 수박을 다 들어 비닐하우스 밖으로 내 버리고, 비닐 하우스를 재정비 하는 일이다.
물과 진흙으로 반 연못이 된 찜통 비닐하우스 안에서 줄기덩이와 열매를 거둬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노동이다. 도시 출신인 나에게 너무도 익숙지 않다. 반면 농촌 출신 A국장님은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에 이골이 난 분이다. 어깨도 아프고, 팔꿈치도 아파서 난 쉬엄쉬엄 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많은 양의 노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일인데, 끌차에 줄기를 담아 내버리는 일이 점점 익숙해진다. A국장님은 “이제야 쑥수가 났다.”며 반가워한다. 도시내기가 농촌에서 인정받으려면 역시 노동력을 인정받는 수밖에 없다.
이미 시니어 사무처 당직자들은 농사복장과 한 몸이 되었다. 도시출신인 내가 약간 “쑥쑤”가 났다 해도 그 수준에 이르려면 확실히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식사시간이다. 노동은 입맛을 돋구워준다. 심지어 나를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남을 위한 노동이라니 더 많이 먹고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게 밥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우리의 노동이 수해민의 피해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뿐이다.
물론 일정이 바쁜 지도부는 1시간 정도만 일하고 다음 일정을 수행하러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수백 명은 정말 열심히 봉사활동을 한다. 여기에 ‘보여주기식’이라는 오명은 아무래도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