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유, 결국 마음이로구나

마음만 달라졌을 뿐인데

by 치유의 하루

자궁암 수술을 한 지 2개월 차 급성 통증으로 응급 CT를 찍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교수는 CT 결과를 읽고 있었다. 그는 모니터를 내쪽으로 돌렸다. 검은 바탕에 하얀 그림 사진이었다. CT 사진 속 신장과 방광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우신염을 앓았던 흔적이 보이네요. 흔한 질병입니다. 그보다 배뇨장애가 있어 보입니다."


그간 좋아진 것 같아서 자가도뇨도 중단하고, 약도 1일 2회로 줄였던 것이 성급했던 모양이었다.


"기능이 좋아지는 것도 왔다 갔다 합니다. 수술 후 시간이 좀 지나면 몸이 이완되어서 느슨해지는 시기가 오지요. 아무래도 지금이 그 시기인 듯합니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 방광이 무리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방광이 늘어난 상태가 반복되면 굳어져서 되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눈과 입가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러자 교수는 마우스를 두세 차례 더블 클릭했다. 수술 당일 복강경으로 찍은 사진이 모니터에 떴다.


"이것 좀 보세요. 내가 그렇게 무자비하게 신경을 지지진 않았어요. 크게 걱정할 것은 없어요. 지금도 환자분 몸이 되돌아오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천천히 돌아오기도 하지만, 통상 6개월 내에 좋아지는 편이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돌아온다’는 말만 귓가에 맴돌았다.





무지하면 무리하게 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방광 기능이 빨리 되돌아오기만을 급급했던 나. 부정적 기운이 나를 감싸도록 내버려 두었던 나. 오직 걸음수 채우기에 집중했던 나. 산행을 강행하곤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고 몰아세웠던 나. 빨리 되돌아오기만을 급급했던 나. 신우신염이 안 걸렸다면 그게 기적이었을 거다.


몸은 내게 사인을 주었다. 뿌연 소변 색상,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몸 어딘가 찌뿌둥한 느낌, 오후가 되면 방전이 되고, 다리를 움직이는데 힘들다는 느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수술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무시했다. 결국 몸은 더욱 강력한 멈춤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건강을 잘 챙기기 위해서는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하구나. 바른 정신에 바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분명 돌아올 거란 믿음으로 나를 돌보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 달 뒤 다시 진료실 앞이다. 이번에는 A4용지에 출력한 종이 몇 장을 손에 쥐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자가 소변량 280ml / 자가 도뇨량 100ml (잔뇨감 없었으나 도뇨량 많음)
자가 소변량 250ml / 자가 도뇨량 50ml (찌릿함 동반)
자가 소변량 200ml / 자가 도뇨량 90ml (불투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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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소변량 270ml / 자가 도뇨량 30ml (찌릿함 있었음)
자가 소변량 310ml / 자가 도뇨량 10ml (투명함)


하루 네다섯 번 매회 자가 도뇨 후 배뇨량과 잔뇨량을 기록한 내용이었다. 통증이나 이상증세 내용도 세세하게 적었다. 그리고 모든 데이터를 도표로 만들어 컴퓨터로 출력했다. 대학병원 진료시간은 매우 한정적이고, 의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한다. 짧은 시간에 추세를 파악해 면밀히 진단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의료인이 아닌 내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숫자는 점차 감소 추세였다. 교수는 대뜸 옆에 앉은 전문의에게 내 기록을 보여주었다.


"여기 봐봐. 이런 잔뇨량 감소세를 보면 환자분은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케이스이지. 그런데 왜 통증을 호소했을까? 이런 경우는 카테터 자극 때문인 거야."


전문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순간 대학 수업에 청강하는 학생처럼 앉아있었다. 교수는 도뇨 횟수를 조금 줄여봐도 좋겠다 했다. 내게 감탄과 칭찬 격려도 잊지 않았다. 병원에서 칭찬이라니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속이 시원하고 후련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갑자기 통증도 사라졌다. 마음만 달라졌을 뿐인데. 마음 편하게, 잘 먹고 지내니 컨디션이 훅훅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음이었다. 몸과 마음은 하나였다. 마음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한방은 없어, 그것은 망상이야

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은 순식간이다


눈에 보이면 조금 쉬워질까. 전업 치병 생활을 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마음이었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순간 어디선가 불어오는 살랑바람에 흔들려 중심을 잃곤 했다.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안 된다니.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버릴 수도 없고. 한 번에, 한방에 해결할 수는 없는 걸까?'


약 2년의 전업 치병 기간 배운 것이 있다면 '한방은 없다'는 점이다. 빨리 받아들일수록 좋다. 한 걸음 빨리 내딛을 수 있으니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열매 맺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의 진리와 우주의 법칙을 거스를 순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점찍듯 해보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아침마다 긍정확언문 쓰기를 시작했다.






작은 것들의 힘


일어나자마자 미지근한 물을 한잔 들고 책상에 앉았다. 지난밤에 올려둔 공책이 있었다. 떠오른 확언을 쓰려다 펜을 내려놓았다.


‘나는 확언 글귀에 적힌 행동을 실행한 사람이 아닌데...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점이라도 찍어보기로 했으니 일단 적자.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손으로 적고 눈으로 읽었다.


'그래, 설령 어제까지 확언 글귀와 정반대 되는 생각과 행동을 했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달라지면 되잖아. 그럼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거니까!'


부정적인 마음에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전환의 순간이었다. 숟가락을 돌려 앞면에서 뒷면으로 뒤집는 데 걸리는 속도였달까. 매일 공책을 펼치며 아침을 열기 시작했다. 손으로 펜을 감싸면 검지에 단단한 힘이 들어갔다. 아침에 적은 문장이 하루 종일 머리에 맴돌았다. 하루에 10분이 나머지 시간인 144분을 바꾼 것이다. 하루 10분이 쌓여 1시간이 되고, 어느새 5시간이 되었다.


'오로지 긍정적인 생각으로만 5시간을 채워본 적이 있던가? 아니, 그럴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작은 행동들의 힘이구나. 꾸준히란 녀석 참 무섭구나.'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졌다. 마음의 중요성을 알고 함께하는 힘을 믿는 사람들 말이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을 함께 만들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내가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졌다는 점에 놀랐다. 이때까지만도 이 작은 행동이 앞으로 어떤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두 번째 여행의 시작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