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두달살기 시작합니다
어제로 마지막 근무일이 종료되었지만 퇴사는 진행형입니다. 서류 정리가 남았거든요. 이제 남은 휴가를 모두 소진하면 비로소 진정한 '자연인'이 됩니다. 아직 심리적으로 적응 중인가 봅니다. '내가 무슨 결정을 한 거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어깨에 날개가 달린 듯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물밀듯이 몰려오기도 하고요. 숨소리도 히힛, 히릿, 히히하고 새어 나오네요.
일단 속초로 왔습니다. 목 뒷덜미는 따갑고 겨드랑이 사이로 부는 바람은 시원합니다. 바다 빛도 모래도 저 멀리 보이는 조도 섬 위에 하얀 등대도 모두 쨍한 색으로 빛납니다.
바다를 끼고 해파랑길을 걷다가 새하얀 건물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제가 애정 하는 속초 카페 아루나입니다. 사장님에게 퇴사 소식을 전하니 앞으로 계획을 물으십니다. 오로지 이번 여름 속초살기 뿐이라 답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계획이 없다고요.
나의 계획은 OO 하지 않는 것
정확히는 계획하지 않는 것이 계획이다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려는습을 잠시 멈추고 싶어서요. 바라는 바가 있다면 오롯이 존재하고 싶습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다급함과 조급함도 그대로 마주하면서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그 도구로 글쓰기를 계획하긴 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쓰며 제가 바라는 바가 많구나 발견하게 됩니다.
음료를 기다리던 중에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봅니다. 제목은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입니다. 작가 소개 글 중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문장 노동자'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노동자라는 글자에 잠시 멈추어봅니다. 저자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쓰고 싶지만 동시에 쓰기 싫은 날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쓰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문장 노동자라고 지칭한 것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두 달 남짓한 시간에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볼까 합니다. 문장 노동자라는 부분은 제외하렵니다. 쓰기 싫은 날에는 그 마음 그대로 바라봐 주고요. 뜨거운 태양 아래 쓰고 싶은 글들을 속시원히 써 내려가는 청량함을 미리 느껴봅니다. 앞으로 제게 퇴사하고 뭐 하냐고 묻는다면 구구절절 설명할 것도 없이 한마디로 답할 것이 생기니 편안합니다. 책장에 두서없이 꽂혀있던 책들이 가나다 순서대로 정렬된 듯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