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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Oct 04. 2023

장바구니, 내 수행의 지표

냉장고 좀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식사와 요리는 살림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 냉장고가 있다. 주방에서 식탁 다음으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식생활 방식과 식구 수, 살림하는 자의 취향에 따라 냉장고의 모습도 각기 다를 것이다. 1인 가구 수가 증가하면서 요리하지 않는 가정 수가 함께 늘었다. 배달 문화가 발달한 영향도 있겠다.



다른 집 냉장고 내부가 어떤지 궁금한 적이 있었는가? 신혼 초에는 우리 집 냉장고를 관리하기에 벅차서 다른 집은 어떤지 관심 둘 여력이 없었다. 궁금하지만 예의상 살펴볼 기회가 없기도 했다.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은 약점을 들키는 것 같기도 했다. 다섯 작가와 살림 이야기를 쓰기로 한 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우리들의 냉장고였다. 겉으로 보기엔 거기서 거기 같은 살림살이다. 냉장고 다섯 대를 열어보면 우리네 살림이 얼마나 다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냉장고 다섯 대, 그중 두 대를 형님네로 보냈다


결혼 생활 십 년간 냉장고가 다섯 번 바뀌었다. 신혼집에 혼수로 장만한 양문형 냉장고가 첫 번째였다. 자고로 가전제품은 10년은 기본 아닌가. 처음 살 때 좋은 것을 사야 한다고 세심하게 골랐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이사 갈 집에는 냉장고가 내장형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중고로 팔기엔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 집 혼수 냉장고를 두 조카가 있는 형님네로 보냈다. 조카들을 보러 갔다가 냉장고를 아득하니 바라보곤 했다. ‘여기가 새집인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새집 빌트인 냉장고는 슈퍼모델 같았다. 어디 한 곳 모나게 튀어나온 부분 없이 쏙 들어간 모습이 다비드 조각상 같았다. 양문형 냉장고지만 용량은 많이 적었다. 김치 냉장고를 별도로 채워주어 안주인들의 불만을 잠재운 듯싶었다. 둘만 사는 집이니 큰 문제가 없겠거니 했다. 다음에 이사 갈 때 냉장고를 떼갈 수 없다는 점만 빼고는. 다행히 그다음 집에도 내장형 냉장고가 있었다. 기존 김치 냉장고는 때마침 결정한 세컨드하우스로 보냈다. 살림살이의 돌림 생활이었다. 상, 중, 하. 세 칸을 냉장, 김치 보관, 냉동 모드로 설정해 일반 냉장고처럼 사용했다. 속초살이를 정리하며 김치 냉장고도 정리가 필요했다. 중고로 넘기자니 상태가 매우 좋아 아까웠다. 서울로 가지고 올라가자니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또 한 번 형님에게 SOS를 보냈다. 그사이 조카가 둘이 더 생겨 6인 가구가 되었으니, 서로 만족스러운 결론이었다. 이제는 단독 냉장고는 없다며 우스갯소리를 실어 보냈다. 조카가 또 생긴다면 모를까.




2인 가구 냉장고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신혼 초기 냉장고 별명은 임시 쓰레기통이다. 배 속으로 들어간 식자재보다 쓰레기봉투에 담은 양이 조금 더 많다. 또 다른 여섯 자 '참 많이도 버렸네'로 요약할 수 있다. 두 식구 모두 회사 생활을 하니 점심은 늘 외식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 50분이다. 간단히 요리한다 해도 식사를 마치면 9시 무렵이었다. 늦어진 식사 시간은 매번 부담스러웠고, 집밥을 먹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당시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는 확산 초기였다. 우리 부부에겐 오프라인 장보기 관성이 남아 있었다. 마트는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주말에 장을 보고 나면 요리보다 쉼이 필요한 때가 많았다. 코스트코 샐러드 두 묶음 중 절반은 늘 메롱 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지리산에서 보내주는 농산물 꾸러미 서비스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작은 상자지만 익숙하지 않은 음식재료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냉장고에 존재를 잊는 일이 빈번했다. 건강하게 먹고살아 보려 했거늘, 먹었다간 건강을 해칠 것이 분명한 상태였다. 음식재료 구매 비용과 쓰레기 처리 비용까지 모두 우리 몫이었다. 노란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형광 경고등처럼 보였다. 요리를 싫어했다면 되려 장바구니를 버리고 외식을 선택했을까. 금전적 지출과 정신적 소비 모두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시골에서 보내주시는 과일, 채소와 김치는 마음의 부담을 더했다.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상상하지 못한 양이었다. 냉장고 한 줄을 채운 어머님 표 김치는 냄새부터 남달랐다. 액젓과 마늘도 넣지 않았다고 했다. 20년 넘게 젓갈이 들어간 전라도 김치와 김치찌개에 익숙했었다. 남편은 김치찌개를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어머님 표 김치는 반찬에 제격이었다. 요리에 어울리지 않으니 두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김치양은 적을 수밖에. 초보 살림꾼에게는 혹독한 훈련의 시간이었다. 냉장고 문을 부여잡고 살림살이를 이어갔다.


결혼 3년 차 시나브로 김치 맛에 익숙해졌으나 소비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주 미묘한 정도로 음식물 쓰레기양이 줄었던 것도 같다. 코스트코 샐러드 구매를 멈추었으니까. 이사 간 집과 창고형 마트 간 거리가 멀어지면서 대량 구매 빈도가 준 영향도 있다. 단지 내 음식물 처리 기계에 쓰레기만 직접 버리도록 바뀌었다. 음식물 무게만큼 과금하는 방식이었다. 아까운 마음에 봉투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살림 중에 가장 고역이라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줄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감내했던 고통이 사라졌다.




냉장고의 대반전 시대가 열리다


2019년 여름, 결혼 5년 차였다. 우리 집 냉장고는 '암'이란 벽을 두고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다. 암을 진단받고 나면 1순위로 변하는 것이 식단이다. 두부 정도를 제외하고 가공식품을 전부 끊었다. 마트로 향하던 발걸음도, 우리 둘만의 데이트도 모두 멈추었다. 지난 삶과 살림살이 방식에 제동을 걸고, 급커브를 만난 듯 단숨에 모든 것을 바꿨다. 가까이에 한살림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를 찾았고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택배가 도착했다. 신선한 음식재료로 건강한 식사를 하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냉장고에 삼일 이상 보관한 채소는 바로 아웃이었다.


삼시 세끼 외에 하루 1L가량 녹즙을 직접 짜서 마셨다. 일주일에 녹즙용 채소만으로 10kg 넘게 소비했다. 김치 냉장고는 채소 냉장고로 기꺼이 변신해 주었다. 더는 임시 쓰레기통이 아니었다. 다음날 소비할 음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해 주는 치유 파트너였다. 나의 치유생활을 돕는 절대적 공신이었다.




이건 아니잖아? 그래도 멈출 순 없는 걸


매 끼니를 챙기는 과정에 집중하니 음식재료를 버리는 양은 확연히 줄었다. 살림살이가 얼마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그제야 알았다. 농산물 직거래 특성상 기본 구매단위는 그램이 아닌 킬로였다. 한살림에서 파프리카 한 봉지에 두 개가 담겨 있다. 500g쯤 될 듯하다. 반면 직거래는 기본 1kg 단위다. 가성비가 좋고 신선하다는 장점은 3kg 이상 구매 시 무료 배송이 적용될 때 이야기다.


제철음식은 내게 곧 약이었다. 때마다 들려오는 음식재료 판매 소식에 표고버섯도, 마늘도, 밤 호박도, 사과도, 배도, 양파도, 고구마도 쓸어 담았다. 냉장고는 물론 다용도실은 상자에 상자로 테트리스 춤을 추었다. 소비량이 많았지만 때때로 벅참이 느껴졌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멈출 순 없었다.




살림살이를 배우고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가. 치유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치유 생활 3년쯤 지나니 치유식이는 안정권에 도달했다. 거의 매일 똑같은 식사의 반복이었다. 한 해 두 해 쌓이니 비결도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마음의 영향이 컸다. 요동치던 마음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장바구니가 내 수행의 지표였구나!


불안하고, 답답하고, 조급하고, 속상했던 부정적인 마음이 가라앉으니 보이더라. 두려움과 불안함, 불만족스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욕구 말이다. 장바구니를 채움으로써 해소하려던 애씀의 흔적들이 가득하였다. 건강한 음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먹고 다시 건강을 되찾길 바라는 소망, 그 뒤로 두려움과 불안함이 쏟아졌던 것이다. 그나마 명품 가방 쇼핑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알아차린 이후로는 장바구니가 제법 가벼워졌다. 장바구니를 채우는 마음도 편안해졌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 2인 식구 기준 적정량을 알았다. 그리고 올해는 십 년 결혼 생활 중 처음으로 김장철이 도래하기 전에 지난해 김장 김치통이 전부 비었다.




귀여운 살림쟁이 납시오


올해도 시골에서 보낸 채소 상자가 날아왔다. 여전히 소비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때도 있다. 오늘 오후에도 곰팡이가 핀 가지 한 묶음을 왕창 버리고 왔다. 예측하지 못한 공급은 어쩔 도리가 없다. 세대원 수를 늘리거나 보다 적극 이웃과 교류하는 수뿐이다. 그래도 살림살이 시작 시점과 비교하면 십 년 사이 크나큰 발전이 있지 않은가. 특히 현시점에서 과거 모습이 이해가 안 될 때 성장했음을 느낀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 날아오는 농산물 꾸러미를 둘이서 감당하지 못했다고? 한주먹 되던 반찬들을 상하게 했다고? 20인도 아니고, 2인 가구의 소비량을 예측하지 못했다니!'


향후 10년 뒤 지금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된다 말하게 될 날을 상상하니 자꾸만 광대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저 귀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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