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이중인격자가 삽니다
김완 작가의 책, 「죽은 자의 집 청소」를 감명 깊게 읽었다. 제목 그대로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산 자의 이야기다. 죽음은 물론, 동시에 삶을 고찰하게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산 자의 집 청소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죽은 자의 집과 산 자의 집을 가르는 한 끗 차이는 바로 ‘청소’라는 생각이다.
우리 집에는 두 사람이 산다. 아이는 없다. 나와 남편, 성인 둘이다. 흔히 아이 장난감은 해도 해도 정리가 안 된다던데 단연코 장난감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실, 부엌, 서재 할 것 없이 꺼내진 짐이 한가득 이다. 캠핑 용품부터 취미 용품, 세컨드하우스 정리 물품까지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이사 오면서 분명 평수가 넓어졌는데 되려 더 좁게 느껴지기도 한다. 묘하게 이상하다.
집 청소의 기본은 쓸고 닦는 것이다. 그중 7할은 마룻바닥 청소다. 이 영역은 전문가에게 온전히 맡긴 지 오래되었다. 손가락 하나로 까딱 작동시키는 로봇청소기 말이다. 너만 믿는다는 신호로 전원 버튼을 꾹 누른다. 이미 학습된 길을 따라 그는 바쁜 여정을 시작한다. 마룻바닥 위의 사정은 그가 책임져주지 못한다. 하여 나는 그와 반대로 출발한다. 서로의 동선은 지켜줘야 하니까.
나머지 3할은 사람 손이 필요하다.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시킨다.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에 맺힌 물 때를 닦아낸다. 또 다른 물 때를 찾아 주방으로 향한다. 싱크대와 배수구 부분을 스펀지로 문질러 낸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배수구 주위로 과탄산소다를 흩날려 뿌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 둔다. 그 사이 걸레질을 한다. 창틀 위아래로 쌓인 먼지와 날벌레 주검을 걸레로 움켜쥔다. 이곳저곳에 불규칙하게 올려진 물건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책상 위에 쌓아둔 책을 책장에 도로 넣는다. 순서는 상관없다. 일단 꽂는 일에만 집중한다. 책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는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기에 책장 정리는 따로 날을 잡는 편이 현명하다. 현관 앞 신발을 정리하고 가볍게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 모은다. 마지막으로 주방 싱크대에 물을 부어 씻어내면 끝이다.
오해 없길 바란다. 매번 이렇게 청소하는 것은 아니다. 체력 소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영역별로 나누어 부분만 청소하는 경우가 잦다. 검은 먼지를 잔뜩 머금은 걸레를 깨끗이 빨고 나면 다시 시작할 힘이 솟아난다.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의욕에 앞서 청소를 계속 이어나가다 이후에 기력이 달려 골골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청소하는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특히 손에 물걸레가 쥐여졌을 때는 나도 모르게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기 쉽다. 중간마다 손목, 어깨, 허리 근육도 스트레칭을 해줘야 한다. 끝난 후에는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며 수분 보충도 필수다. 새하얀 탁자 위에 검은 컵 주위로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때 만끽하는 쾌감이란 걸레를 쥐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청소 역시 작정하고 시작할 때가 있다. 바로 손님이 오기로 한때이다. 어느 집이나 비슷할 거라 믿는다. 손님 방문 1분 전까지도 쉼 없이 정리를 이어간다. 현관문 벨이 울리고서야 실로 청소를 멈추는 격이다.
청소 전후 상황은 흡사 메이크업 전후 모습과 같다. 때로는 분장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법사나 요술램프 지니가 다녀간 것은 아닐는지 상상도 해본다. 집도 마찬가지다. 매일 머무는 공간이지만, 청소를 마치고 나면 사뭇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평소에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서류와 책 가지들이 사라진 모습, 바닥에 켜켜이 쌓인 방석과 담요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모습, 부엌 아일랜드 테이블 위로 문양이 보일 때. 혹여 내가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온갖 잡동사니가 레드선 손가락을 튕기며 한방에 정리된 마법을 부린듯싶기도 하다.
청소 도중 이중인격자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손님들이 깨끗한 곳에 머물다 가길 바라는 마음도 물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집을 나와 동일시하는 심리도 섞여 있다. 우리 집을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곧 나를 이렇게 봐주기를 하는 욕구가 반짝이며 드러나는 것 같다. 손님들은 현관문을 들어오면서부터 집이 깨끗하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오늘만 그렇다고 답하면서도 입꼬리는 씰룩쌜룩 춤을 춘다. 우스갯소리로 주기적으로 손님이 와줘야 집이 산다는 말도 건넨다. 얼마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사는지 드러나는 순간이다. 나 역시 1시간 전의 집과는 꽤 다른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머무르길 바랐다'는 욕구 역시 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미루다 몰아서 청소하려니 오래 걸리고, 버겁고, 체력 부족을 느끼게 된다. 날마다 조금씩 나누어 청소하는 방법을 상상해 본다. 매일 손님처럼 살아보는 것이다. 손님만큼이나 중요한 나 자신을 위해 귀찮음을 잠시 잊어보는 것. 내가 머무는 공간을, 내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을 쓸고 닦으며 살피고 돌보는 것. 그것이 산 집이자, 살림이자, 곧 사랑이 아닐까. 손님이 청소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