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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Nov 16. 2023

카레라이스로 건강을 챙길 순 없다

당신을 살린 음식은 무엇입니까?

“여보, 결혼 후에 먹었던 음식 중에 기억에 남는 게 뭐예요? 당신을 살린 음식이 있다면요?”


“콩물, 호두... 그리고 사과요!”


“전부 재료에 가까운 음식이네요. 요리 중에는 없을까요?”


“우리가 요리한 음식을 주로 먹진 않잖아요? ㅎㅎ”


2019년 암 진단 이후 우리 집 식탁은 180도 바뀌었다. 암세포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동물성 식품과 가공식품을 전부 제외했고, 채소 요리도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다시마 물을 이용해 볶아내었다. 내 마음속 암 치유식 스승님, 써니 님께 배운 방식이었다.


“그렇담, 카레요. 콩물 카레!”


'블로그에 처음으로 기록을 남겼던 치유의 음식도 카레였는데...!'




카레의 배신


암 진단받은 일로부터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남편은 우리 부부가 식사에 소홀했던 것 같다며 집밥을 차리겠노라 카레를 끓였다. 3L 정도 되었을까. 큰 스테인리스 냄비를 꺼내 양파와 당근, 갖은 채소를 몽땅 넣고 노란 카레 가루를 풀어 뭉근히 끓여냈다. 유리 반찬 통에 나누어 냉장고에 넣고 끼니때마다 꺼내 먹었다. 그야말로 황금빛 세상이었다. 곧 잿빛으로 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많던 카레를 오로지 남편이 다 먹게 될 줄도 몰랐다.


일반적으로 카레는 건강식으로 인식되어 있다. 항암성분으로 알려진 ‘강황' 때문이다. 노란색 카레 봉지 앞부분에는 ‘강황' 첨가라는 큰 글자가 눈에 띈다. 건강한 음식에 소홀했던 소비자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두 글자다. 가족의 건강을 챙긴다는 자부심을 더해주는 두 글자다. 매큼한 감칠맛으로 유혹하는 마력의 봉지다. 한 번 끓이면 두세 끼니는 끄떡없어 든든해지는 두 글자다. 덥히기만 하면 되는 인스턴트 봉지 대신 가루를 선택했으니 건강한 집밥을 만들어 낼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다. 카레에 온갖 채소를 넣어도 아이들이 잘 먹는 탓에 주부들의 치트키 메뉴가 되기도 한다. 카레에 넣을 감자, 당근, 양파와 고기를 장바구니에 담아 당당히 계산대로 향한다. 뒷부분을 살펴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카레는 사실 쾌락식에 가깝다. (고형 제품도 마찬가지다.)


맙소사,
카레가 건강식이 아니라니?!!!



카레 제품 뒷면에 적힌 성분은 충격적이었다. 첨가물 종류가 상당했다. 라면 수프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실성분을 떠나 '카레는 건강식이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중 항암 성분이라는 '강황'은 고작 10%에 불과했다. 이런 배신이 다 있구먼! 나 홀로 당한 배신이라 어디 하소연할 곳은 없었다. 생각해 보라. 요리를 알지 못해서 카레를 망쳤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누구라도 요리사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가루 아니던가! 라면 수프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한살림 채식 카레도 살펴보았지만, 밀가루가 들어가 있었다. 전업치병 시절은 건강식을 넘어 치유식이에 집중했을 때다. 두부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가공식품을 끊었던 때였다. 옛날에 먹던 카레가 그리울 무렵 써니 님의 '강황' 가루와 콩물로 만든 수제 카레를 접하게 되었다. 토마토 카레, 채소 카레, 버섯 카레, 3분 카레는 들어봤지만, 콩물 카레는 처음이었다.


카레 가루 대신 '강황' 가루를 넣어 만드는 방식이었다. 시중 카레처럼 되직하지는 않았다. 밀가루를 넣지 않기 때문이다. 콩물을 넣어 살짝 걸쭉하게, 맛은 부드럽게 해 주었다. 비슷한 무엇을 만들어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다. 게다가 강황은 진짜 항암 식품이니 챙겨 먹으면 좋은 음식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수제 강황 카레를 처음 맛보았을 때 맛은 없었다. 대신 한 입 두 입 계속 먹어보게 하는 고소한 매력은 있었다. 수제 콩물의 힘이었다. 조리 과정이 단순해 이따금 요리 피로도를 낮춰주기도 했다. 거의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속이 편안했고 물이 쓰이지 않았다. 그제야 시중 카레가 얼마나 자극적인지 몸소 배웠다. 그렇게 수제 콩물과 더불어 수제 콩물 카레는 우리 부부의 최애 음식이 되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남편이 쥐눈이콩으로 만든 검은색 콩물 한 병이 남아있다. 냉동실에는 노란 콩과 검정콩이 한가득 이다. 시나브로 추워지는 날씨와도 잘 어울리는 음식, 따뜻한 콩물과 콩물 카레가 생각나는 날이다.




수제 콩물 카레, 이렇게 만듭니다


1. 먼저 콩물을 만든다.

콩물 카레이니만큼 수제 콩물이 핵심 재료다.

콩은 불려도 되고, 불리지 않은 채로 만들 수도 있다.

콩물 제조기(이유식 제조기)에 콩과 물을 넣고 버튼을 눌러 기다린다. 약간의 소음을 견디기만 하면 된다.  목에 콩비지 입자가 걸리는 것이 싫거나 소화가 잘 안 된다면 체에 비지를 걸러낸다.



2. 채소와 버섯을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한다.

아래 콩물 카레와 잘 어울리는 재료를 추천한다. 정해진 재료는 없다. 냉장고를 털어 나오는 채소로 만들면 된다.


(1) 기본 삼총사 : 토마토, 양파, 마늘

대표적인 항암 음식재료를 기본으로 넣어 최고의 항암제를 만들어 보자. 토마토는 강황의 매운맛을 중화시켜 주고 전체적으로 감칠맛을 더해준다.


파프리카, 양배추,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청경채, 애호박, 가지, 오크라 등을 넣어 식감과 색감을 모두 챙겨보자. 알록달록 예쁜 색감이 식욕을 자극해 소화를 도와준다. 별그램 사진도 건질 수 있다.


(2) 새송이 버섯

고기나 해산물을 넣어도 되지만, 버섯으로 대체해도 아주 맛있는 카레를 만들 수 있다.


버섯은 새송이, 표고, 느타리, 양송이, 팽이버섯 어떤 것으로도 대체 할 수 있다. 버섯에서 나오는 물이 감칠맛을 좌우하기도 한다. 마른 표고버섯을 물에 우려 사용할 수 있다. 여러 종류 버섯을 넣어 모둠 버섯 카레를 만들 수도 있다.



3. 콩물과 토마토, 양파, 마늘, 준비한 재료를 냄비에 넣고 한소끔 끓여낸다.



4. 강황 가루를 넣는다.

콩물 카레 요리법의 하이라이트다. 할 것! 아주 티끌만큼 넣어야 한다. 새끼손가락 손톱 정도면 충분하다. 실수하기 딱 좋은 지점이다. 당신만큼은 내가 범한 잘못을 피해 가길 바라며 과장없이 반복하여 강조하고 싶다. 내 새끼손톱 크기를 얕보지 말자. 절대 과감해지지 말자. 그동안 봐왔던 노란 카레 색상을 기대하면 안 된다. 콩물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연한 노란색이 나올 것이다. 조금 넣어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그때 추가하자.


5. 기호에 맞게 적당히 간을 한다.


6. 재료가 익을 때까지 끓이면 끝이다.




준비물


- 콩물 (콩, 콩물 제조기) 또는 콩가루

- 강황(울금) 가루

- 토마토, 양파, 마늘

- 제철 채소와 버섯

- 들깨가루, 후춧가루, 들기름, 올리브유




예상되는 질문과 꿀팁을 모아서


Q1. 콩물 제조기가 없다면?

콩을 삶아서 믹서에 갈아 사용해도 좋다. 콩가루를 물에 풀어 넣어도 된다.


수제 콩물 꾸준히 먹어보고 싶은가? 콩물 제조기 구매를 적극 권장한다. 단순한 제품을 찾아보자. 콩물 제조 버튼만 있다면 된다. 괜히 여러 기능이 추가되면 가격만 올라간다. 새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 동네 중고시장을 검색해 보자. '콩물 제조기', '이유식 제조기' 등의 키워드를 넣어 보라. 아이들 이유식 시기가 지나고 더는 사용하지 않아 처분하려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유식 제조기에 콩물 기능이 추가된 경우가 많다. 이유식 만들어봤자 사용 기한은 1~2년 이내이고 실사용 횟수도 그리 높지 않다. 필자도 새것 같은 중고물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했다.


Q2. 단백질을 좀 더 보충하고 싶다면?

두부를 추가해 보자. 일반 두부보다 단단한 마른 두부를 추천한다. 요리하는 과정 중 으스러짐이 적어 모양을 내기에 좋다. 단단한 식감이 치즈 같기도 하다.


Q3. 단맛을 첨가하고 싶다면?

고구마 또는 단호박, 밤을 추가해 보자. 양파를 다른 채소보다 많이 넣는 것도 방법이다. 대체 당보다는 최대한 자연의 단맛을 더하기를 권하고 싶다. 어린아이들(또는 어린이 입맛의 성인)에게는 사과즙으로 단맛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겠다.


Q4. 풍미와 영양을 더하고 싶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들깨가루

먹기 전에 한 숟가락 뿌려 섞어 먹으면 부드러움이 가미된다. 혹여 강황 가루를 너무 많이 넣어 맵게 느껴진다면 들깨가루를 더해보자. 한층 크리미 해지면서 매운맛을 중화시켜주기도 한다.


(2) 들기름, 올리브유

들깨가루 대신 들기름이나 올리브유를 둘러 먹는 것도 좋다. 오메가-3 보충도 가능하고, 익은 토마토와 기름 간 궁합이 잘 맞아 흡수율이 높아진다.


(3) 후춧가루

후추는 강황 속 커큐민 성분이 잘 흡수되도록 돕는다. 자타공인 강황의 단짝인 셈이다. 후추의 알싸하고 매콤한 맛과 향을 좋아한다면 곁들여 보시길 추천한다. 대신, 조리가 완료된 이후 그릇에 담아 먹기 직전에 뿌려 먹자. 후추는 열과 만나면 발암 성분이 유발된다고 한다.


Q5. 강황 가루와 울금 가루는 같다?

강황 가루와 울금 가루에 대한 혼선은 여전한 듯하다. 성질의 차이 또는 원산지의 차이 등으로 구분하는 듯 보였으나 이마저도 명확하진 않다. 적어도 지금의 유통시장에서 접할 수 있는 울금과 강황은 같은 식물종의 같은 부위라 한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무엇을 사느냐 보다 한번에 많은 양을 사지 않는 편이 더 중요하다. 예컨대 항암 식품이라 광고하며 1kg씩 판매하는 곳도 있다. 1회분 섭취권장량이 적은 편이고, 카레를 매일 해 먹을 것도 아니다. 유기농 매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작은 후추병 정도 크기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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