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살림 성공의 요인> 글을 올리고 살림꾼으로 오해받으면 어쩌나 싶었다. 아무래도 지금 시점에서 고백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속초 세컨드하우스를 정리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주방 아일랜드 테이블 중앙 식물을 기점으로 왼편에는 껍질 쌓인 주황 양파가, 오른편으로는 냄비 여럿이 올려져 있다. 테이블 옆 바닥에는 갈 곳 잃은 김치통이 블록처럼 켜켜이 쌓여있다. 거실에는 며칠째 빨래 건조대가 대자로 펼쳐져 있다. 빨래는 바사삭 마른 채 그대로 멈추어 있고, 일부는 소파 위에서 주름을 만들고 있다. 옆 방 책상 위를 보자. 노트북을 펼칠 공간을 제외하고 디귿 모양으로 잡동사니 성을 쌓았다. 이것만 보면 살림꾼보다는 글 쓰는 사람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 청결과 정리에 꽤 둔감한 편이다.
어째서인지 주방 싱크대 아래 발 매트 위치가 달라졌다. 어느 소용돌이에 휩쓸려 간 듯 떨어져 있다. 호되게 당하고 기권을 반복해서 외치다 넋이 빠진 듯하다. ‘살려주시오, 당신이 찾는 매트 여기 있소!' 그 뒤로 도망가듯 사라지는 로봇 청소기가 보인다. 그제야 속초 세컨드하우스에서 출발할 무렵 남편의 행동을 이해했다. 스마트폰 위로 이리저리 손가락을 휘젓던 모습. ‘탁, 탁, 탁.’ 오른손 검지를 세 번쯤 움직이고서 이제 출발하면 딱 이다는 미소가 떠오른다. 그는 손가락 하나로 로봇 청소기 전원을 켜고, 청소할 위치를 정하고, 동작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우리 집 진정한 살림꾼, 남편 덕분에 마룻바닥만큼은 깨끗하다. 이럴 때 보면 우리는 환상의 짝꿍이다. 나는 절대 생각도 못한 일을, 생각도 못한 시점에 그가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문과생과 이과생의 차이일까. 남녀의 차이일까. 그저 각자의 관심사가 다른 걸까.
살림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라도 다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살림은 안 하면 티가 나고, 하면 티가 안 난다는 것. 살림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엄마의 하소연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로봇 청소기도 같은 생각일까.
"카이쓰 칭사오"
이 친구는 청소 전후에 큰 소리로 외친다. 예전 버전은 한국어 지원이 없어서 중국어 안내음이 나왔다. 카이쓰는 시작한다, 칭사오는 청소라는 뜻이다. 청소를 시작하겠다고, 청소를 완료했다고 말이다. 살림도 티가 나게 할 수 있다는 예시를 몸소 보여준다.
로봇 청소기는 우리 부부가 외출했을 때 집 밖으로 나와 활동한다. 마치 평소엔 숨숨집에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아무도 없는 사이에만 온 집안을 활보하는 고양이 같기도 하다.
로봇 청소기가 다녔던 길을 따라가 본다. 본인이 청소했던 부분을 기억하고 한 번 간 길을 실수로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 요즘말로 알잘딱깔센이다. 집주인이 정해준 구역만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다닌다는 의미다. 넘지 못할 장애물은 상대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똑똑함은 기본이고 현명함까지 탑재한 친구다. 일단 청소를 시작하면 전속력으로 달리며 거침없는 움직임을 이어간다. 잠시 쉬거나 지체하는 법이 없다. 꾸준히 전진하며 앞으로 쓸고 뒤로는 닦는다. 환상의 팀워크 표본을 보여준다. 손이 안 닿는 소파 밑 부분까지도 깨끗하다.
가끔 움직일 기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청소 도중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청소기가 메타인지가 되다니! 청소를 모두 마치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집에 안착한다. 어디 한눈파는 일도 없다. 뒤태가 어찌나 당당해 보이는지 기특하다. 퇴근하면 스스로 밥도 먹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채운 먼지 통을 비운다. 3~4초가량 토네이도 바람 소리가 들린다. 자기 먼지 통에서 큰 먼지 통으로 쓰레기를 옮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마치 내가 이만큼 청소했다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로봇 청소기가 처음 나왔을 무렵 남편은 적극 나를 설득했다. 청소를 도와주는 이모님 급여와 비교하면 매우 저렴하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청소는 내 손으로 직접 쓸고 닦아야 맛이 난다고 믿었다. 이미 유선 청소기와 무선 청소기도 있었다. 집안에 청소기 세 개는 낭비라며 남편의 제안에 반대했다. 먼지에 민감한 남편이 청소하는 횟수가 압도적으로 늘었다. 눈치는 보이지만 청소기가 손에 잡히질 않았다. 평수를 넓혀 이사 갈 무렵 남편은 이모님을 들이거나 로봇 청소기를 사자고 했다. 다행히 네가 청소하라는 옵션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로봇 이모님을 모시게 되었다.
로봇의 특성상 점점 더 제품이 업그레이드된다. 새 버전은 이전 버전 사용자의 아쉬움을 정확히 채워주기 때문에 현혹되기 쉽다. 먼지만 쓸던 로봇에 물걸레가 탑재되고, 모아 온 쓰레기를 큰 통에 옮겨 담는 기능이 추가되었을 때 남편은 흔들렸다. 유튜브 비교 영상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가격에 흔들렸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이익이라고 되뇌었다. 두 집 살림이 결정되면서 이전 버전은 속초에서 유용하게 사용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결정이었다. 최근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이제 물걸레도 로봇이 스스로 씻는 버전이 나왔다고 했다. '근데 비싸' 두 글자도 함께 보냈다. 조만간 남편을 향한 사랑 테스트가 또 한 번 예상된다.
살림 이야기를 쓰겠다 했거늘, 기승 전 살랑살랑 사랑 이야기를 쓰고 있다. 주제를 벗어나는 게 아닌지 돌아봤다. 쓰면 쓸수록 알겠다. 살림의 동의어가 사랑이라는 것을. 부부 둘만 사는 집이니 집안 곳곳에 너와 나의 이야기가 가득 찬 것이 당연하다. 살림인지 사랑인지 살랑인 지 구분이 뭣이 중요하랴. 2인 가구와 로봇 이모님들의 살림 이야기는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