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일을 하느라 바쁜 시기였다.
하루하루 쪄들어가는 일상에 온몸이 흐물거리던 여름날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연락이 와 주말에 맥주축제를 가자고 했다.
우연하게도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신의 생일에 오지 말라며 그해만 자유권을 주었다.
그래, 할 일도 없는데 맥주축제? 가보지 뭐
하늘색 거즈면 셔츠에 통짜 리넨 검정 고무줄바지를 걸치고
떨리떨레 나갔다. 선크림에 입술만 겨우 칠하고.
그냥 맥주 한잔이나 시원하게 하고 올 참이었기에
참으로 집 앞 마실 패션으로 나갔다.
세상에, 20대의 젊은 친구들의 힙한 옷차림과
사람이 미어터질 듯이 많았다.
작은 축제가 아니고 정말 몇 만명이 모였을 대규모 축제였다.
아차, 내 옷차림이 꽤나 부끄러워졌다.
중년으로 보이는 부부 옆 테이블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
시간이 지나니 중년부부는 자리를 떴고,
어떤 남자 두 명이 우리 옆자리로 다가가 그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자리 있어요?'
'아뇨, 방금 가셨어요.'
'그럼 자리 좀 맡아주세요.'
'빨리 오세요. 자리 뺏겨요.'
'네네. 얼른 올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니, 온다는 남자가 20분이 지나도 안 온다.
그 사이 계속 사람들이 자리 있냐고 되물었다.
우리도 계속 자리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옆자리에는 다른 팀을 앉혔고
그 남자 둘은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와 마시던 맥주가 떨어지자
나는 맥주를 받으러 길을 나섰는데,
아까 자리를 맡아달라는 그 남자를 만났다.
'어!! 왜 안 왔어요, 기다렸는데.'
'아 죄송해요.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더라고요.'
'그렇죠. 여기 너무 넓어서 찾기가 어렵긴 해요.'
'그럼 재밌게 놀다 가세요.'
'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그렇게 나는 그 남자와 대화를 마치고 친구와의 자리로 돌아왔다.
또 한참을 친구와 맥주를 마시고 있는 터였다. 친구가 인싸인 덕분에
주변에 아는 일행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점점 파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싸친구 옆에서 나는 맥주 셔틀이 되어야 했다.
또 맥주는 가지러 가는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다른 곳으로 맥주를 받으러 가는 참이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또 아까 그 남자랑 마주쳤다.
'어? 또 만났네, 이렇게 넓은데 또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어어어, 그렇네요! 신기하다. 다음에 또 만나면 이야기하죠.'
그렇게 헤어지고
이번에는 또 다른 길에서 또 만났다.
이건 운명 아닌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