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빠릿한 달팽이 Dec 30. 2020

너는 자존심도 없냐!

누구한테 하는 얘기?

가끔 난데없이 아이들한테 "엄마 좋아?" 하고 묻곤 한다. 생색낼만한 순간은 물론이고 그냥 옆에 지나갈 때나 할 말 없을 때도 뜬금없이. 엄마 좋냐는 말보다 훨씬 더 자주 하는 건 포옹과 뽀뽀다. 이건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일상.

둘째는 '아직' 사랑이 넘치는 어린이라 매번 사랑이 넘치는 대답을 한다. 관전 포인트는 사춘기 아들 첫째. 어릴 때부터 애교가 넘치진 않았어도 엄마 좋냐고 물으면 스스럼없이 "응." 했고, 포옹이나 뽀뽀에도 그냥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어머나. 옛날 기록을 보니 "사랑한다면 안아주세요!" 같은 사랑스러운 말을 할 때도 있었네!)



아이는 사춘기 즈음부터는 대답도 심드렁해지고, 내가 안을 때도 열에 일곱은 '그래, 내가 안아(안겨) 준다.' 하는 분위기다. 뽀뽀도 볼을 내주면서 '할 테면 해라' 하는 느낌. (그래도 거부하지 않는 게 어디냐.)

며칠 전 거실에서 지나가다 첫째를 안았는데 유난히 시큰둥한 거다.

나 : 엄마 좋아?
아이 : 아니.
나 : 안는 것도 싫어?
아이 : 어.
나 : 너 용돈 받기 싫은가 보다.
아이 : 아니, 좋아.
나 : 너 돈 때문에 그새 대답을 바꾼 거야?
아이 : 어.
나 : 우쒸! (안은 채로 옆구리 펀치 한 방) 넌 자존심도 없냐?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는 순간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방금 누구한테 한 소리냐?'


오늘 아침에도 똑같이 안으면서 물었다.

나 : 엄마 좋아?
아들 : 어.
나 : 안는 거는?
아들 : 반반.


이 정도면 합격이다.
당분간 다시 묻지 않고 이 대답을 만끽하기로.



덧붙임 1.
한 번은 아이가 아이패드에 저장해놓은 뭐가 날아갔다며 방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며 한바탕 화풀이를 하다가 잠잠해졌다. 어찌 해결했는지 제정신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있던 나에게 슬그머니 안기는 게 아닌가. 유후!



덧붙임 2.

가끔 첫째가 미워 보일 때 하는 대화다.

나 : (나름 시니컬하게) 내가 너 좋아하는 거 같냐?

아이 : 어.

나 : (아니거든!)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지?

아이 : 몰라.


평소에 많이 안아준 덕분인가.

(근데 나도 너 안 좋아할 때 많이 있거든!)

매거진의 이전글 꿈 타령에 대처하는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