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아이가 난데없이 자전거를 만들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레고에도 관심 없던 아이가 난데없이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자전거 조립이 취미인 친한 친구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친구랑 같이 조립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겠단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괜찮은 자전거 프레임을 당근마켓에서 찾았다고, 주말에 친구들과 같이 가서 사 올 거라고. 응? 중학생이 당근마켓? 딱히 뭐라고 할 건 없는데 갸웃하게 되는 것이 가을에 친구들과 갈비를 사 먹는다고 했을 때 '응?' 하던 그 느낌.
그래.. 뭐.. 그럴 수 있긴 한데... 하는 중에 중고 거래에서 일어났더라는 별의별 얘기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정작 여러 중고 사이트를 이용하는 나는 중고 거래로 불쾌했던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혹시 사기인지, 판매자 조회는 해봤는지 살짝 조바심도 났지만 직거래라 위험 변수는 줄겠다 싶었다.
문제는 판매자가 우리 집 근처가 아닌 옆옆 동네에 산다는 거. 차로 30분 거리인데다 당근마켓 특성상 같은 동네가 아니면 GPS 인식이 안 돼서 미리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거다. 일요일에 친구들이랑 버스를 타고 그 동네에 가서 채팅으로 판매자에게 연락하고 만나서 사 온다는 게 아이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미리 연락도 못 하고 무작정 가서 연락한다고? 못 나온다고 하면 그냥 돌아오고? (그게 뭐라고 같이 가겠다는 친구들은 또 무엇)
처음 들을 땐 황당했지만 허탕을 쳐도, 혹시나 실물이 마음에 안 드는 돌발 상황이 생겨도 다 경험이 되겠다 싶었다. 근데 하필 그때가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1,000명 이상 쏟아지던 시기였다. 날씨도 심란한데 이 시국에 버스를 타는 게 마음에 걸리는 거다.
처음에는 승낙을 하다가 버스 때문에 반대를 하니 아이가 강하게 반발했다. 한참 설전을 벌이고 있는 중에 퇴근한 남편이 합류했다. 문제는 남편 말에 논리가 없는 것. '누가 이 한겨울에 자전거 부품을 사고파냐, 봄 되면 물건이 더 많이 나오지', '이 추운 날에 누가 돌아다니냐'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그 자전거 프레임이 장물이면 너도 처벌받는다', '그 사람이 가격 더 올려 달라고 하면 어떡할래', 심지어 '돈을 쓸 생각만 하지 벌 생각은 안 한다' 는 얘기까지 하는 거다. 듣자 하니 어이가 없어서...
아이들 앞에서는 남편의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고 예전에 들었다. 하지만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 납득이 안 되는 말을 해도 남편이라는 이유로 침묵하는 건 오히려 남편을 우습게 만드는 거 아닌가. 애들도 생각이라는 걸 하는데 말이다. 기본 예의를 갖춘다면 비난 아닌 비판은 부부 사이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쌍방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최대한 차분하게 남편한테 말했다.
"자기가 지금 하는 말에 논리가 없어. 정확하게 뭐 때문에 싫은 거야?"
잠깐 생각하던 남편이 딱 한 마디 던지고 방에서 나갔다. "그냥 다 싫어!"
그래, 그거지. 쓸데없는 거라고 생각하니 그냥 안 했으면 좋겠는 거다. 스스로도 혼란스럽고 생각 정리가 안 되니 횡설수설한 거.
아이 없는 자리에서 남편한테 물어봤다.
나: 자기 중고로 사고팔고 안 해봤지?
남편: 미국에서 무빙 세일해봤잖아.
나: 그건 내가 다 세팅해놓고 자기는 움직이기만 한 거고.
남편: ... 난 물건 중고로 안 사.
나: (자랑이다..)
남편: 기계나 조립 같은 거 관심도 없는 애가 왜 갑자기 자전거 조립이야? 쟤가 그런 거 잘 할 거라고 생각해?
나: 안 하던 거 해보면 안 돼? 그리고 뭘 하면 꼭 최고로 잘 해야 돼? 그냥 재미로 해볼 수도 있는 거잖아. 언제는 관심사가 없다고 뭐라고 하더니 이젠 관심 있는 건 다 잘 해야 되는 거야? 이 넘의 1등주의.. 솔직히 말해봐. 자기는 **이가 공부에만 관심 있으면 좋겠지?
남편: ...
(이 와중에 남편의 장점을 찾자면.. 내가 팩폭을 날리면 자존심 상해하거나 고집 피우지 않고 바로 침묵으로 인정하는 거다.)
결국 남편이 아이와 아이 친구들을 차에 태워서 데려다주는 걸로 순조롭게 합의를 했다. 다행히 판매자가 바로 나와서 아이는 일사천리로 첫 중고 거래를 마쳤다고.
자전거 프레임을 시작으로 아이는 다른 부품들도 하나씩 사고 있다. 모아둔 용돈에 저금통 동전, 다음 달 용돈 가불까지 해서. (중딩의 영끌)
휠은 인터넷으로 사야 한대서 아이한테 돈을 받고 내가 주문해줬다. 처음 주문한 휠이 다른 모델로 대체되고, 바퀴 하나가 다르게 와서 맞교환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는 인터넷에서 가격 비교를 하고, 판매자랑 직접 통화하고,저금한 동전을 은행에서 지폐로 바꿨다. 모르는 사람과 눈도 잘 안 맞추는 중딩이 이런 걸 하는 것도 나름 도전이었다. (은행에서는 둘 중 어떤 번호표를 뽑아야 하는지 잠깐 헤맸단다.) 나한테는 특별할 것 없는 일들이 아이한테는 모두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던 거다.
이렇게 별 것 아닌 일을 처음 해보면서 아이는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완성될 자전거도 궁금하지만 자전거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경험도 많이 할 수 있길 기대한다.
P.S
아이가 판매자한테 휠 하나가 잘못 왔다고 전화를 하는데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휠 주문한 사람인데요.." 하는 거다. 하아.. 통화 후에, 처음 전화하면 '안녕하세요' 먼저 하는 거라며 인사하는 것부터 가르쳐야 했다. 30분쯤 있다가 다시 판매자한테 전화할 일이 있었는데 이번엔 또 배웠다고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거다. 아이고.. 이 어설픈 중딩을 어쩔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