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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릿한 달팽이 Mar 14. 2021

놓지마, 정신줄.

사춘기 아이 엄마의 다짐

엊그제 아침이었다. 첫째가 학교에 가야 하는데 자기 면 마스크가 없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분명 소파 빨래더미에 있을 텐데 그날도 눈앞에 두고 못 찾는 것이었다. 그러게 전날 저녁에 자기 거 다 챙겨갔으면 됐을 것을.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는 각자 자기 거 챙겨 가는 게 규칙이다.) 없으면 일회용 마스크를 쓰라고 했더니 땀 차고 답답하다며 짜증을 내는 거다. 빨래더미 다시 찾아보라고 해도 없다며 계속 짜증 내는 아이.

평소 같으면 난 모르오 했을 텐데 그날따라 우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열 번 중 여덟 번은 좋게 넘어가는데 그 순간은 강한 자에게 강해지는 성격이 발현된 순간. "너 내가 마스크 찾으면 네 용돈에서 5천 원 깐다!" 하고 달려가 단박에 마스크를 찾았다. 그랬더니 아이가 자기 돈 없다면서 까지 말라고 있는 대로 짜증을 내는 거다. 나나 아이 둘 다 자기 얘기만 하니 타협점은 없고 등교 시간은 다가오고.. 5천 원 주기 싫으면 마스크 내놓으라고 (완전 유치), 너 학교 안 가냐고, 용돈 얘기를 지금 해야겠냐고, 지금 뭐가 중요한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강경하게 나간 나. 이따 생각하는 거 싫고 지금 다 해결하고 가야 한다는 아이.

결국 아이는 성질만 내다가 짜증 가득인 상태로 면 마스크를 하고 등교 시간 빠듯하게 집을 나섰다. 아이가 가고 나니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적어도 집 나설 때랑 잠잘 때는 무조건 기분 좋은 상태로 보내주는데 5천 원이 뭐라고 아침부터 그 난리를 쳤나. 이렇게 찜찜할 거 그냥 좀 져주지. 사실 냉정하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던 와중에도 확 장난 모드로 전환할까 잠깐 혹했지만 그 순간엔 그러기가 싫었다. (평소엔 진지한 분위기에서 미친 척 애교를 부리거나 확 힘을 뺄 때가 있다.) 지각을 하든 진단평가를 망치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며 더 고집을 부린 것 같다. 지금 뭐가 중요한지 생각해 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온 순간 '누구한테 하는 말?'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만 있어 봐. 말리지 마!' 하며 그냥 묵살해버린 것.


오전 내내 찜찜하고 기분도 가라앉았다. 한참 지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다행히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말간 얼굴로. 평소처럼 안아주고 얘기하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싱겁게 끝이 났다. 사과하고 잘잘못을 정리해야 하는 사건도 있지만 이렇게 포옹 한 번으로 스르르 녹아버리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우당탕탕 성질을 내다가 문제가 해결되거나 맛있는 걸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히히거리는 중2 녀석. 그 널뛰는 장단에 엄마가 같이 놀아나면 되겠나. 나라도 정신을 차리자.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제일 중요한 지 파악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자. 정신줄을 놓치면 후회가 길다.



P.S
뜬금없지만 지난주 첫째랑 나눴던 얘기. (기록용)

나: 엄마가 너 좋아하는 거 같냐?
아이: 음. 근데 적당히 좋아하면 좋겠어.
나: 허! 착각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 너 그렇게 안 좋아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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