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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Jan 27. 2019

이 디저트는 열흘 후면 사라져요



You complete me.
(당신이 나를 완전하게 해.)


우리 집에 사는 4명의 하우스메이트(housemate)부터 회사 동료들까지, 내가 만난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바로, 와인, 커피, 그리고 달달한 디저트다. 식사는 파스타와 피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들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면 메뉴를 먼저 고르고 메뉴와 어울리는 와인을 고른다. 혹은, 식사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식사 와인과는 다른 종류의 와인을 글라스(glass)로 주문해 따로 마시기도 한다. 식사에 와인이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음식의 풍미를 돋우는 와인과 함께 식사를 마치면? 당연히 커피를 마신다. 그런데 커피만 마실까?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만큼 배가 부른 게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뜻하게 몸을 데운 와인이 살짝 어지럽게 할 때쯤, 찐한 에스프레소와 달달한 디저트를 입 안에 머금고 아기자기하게 오물거린다. 이 시간만큼은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음~"이라는 만족스러운 감탄사만이 식탁을 가득 채운다. 디저트를 다 비우면, 그제야 비로소 이 말을 꺼낼 수 있다. "이 식사는 정말 환상적이었어." 이미 와인에 취해 제 몸을 가눌 수 없는 사람조차도 무의식적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이탈리아 돌체의 대표선수, 달달한 티라미수(tiramisu) ⓒ리지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탐 크루즈 명대사 "You complete me.(당신이 나를 완전하게 해.)"를 들을만한 존재.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들. 피자, 파스타, 와인, 그리고 커피를 완벽하게 하는 그 주인공, 이름도 찬란한 '돌체(dolce)'다. 이탈리아어 돌체는 '달다'라는 뜻이다. 돌체라는 단어는, 달콤한 인생이라는 뜻의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처럼 무언가를 수식하는 데 자주 쓰인다. 그러나 돌체라는 단어는 다른 단어를 수식하는 역할로 남기엔 너무나 큰 존재다. 이탈리아에서는 '돌체'를 식사 후 먹는 달달한 후식 지칭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티라미수(tiramisu)가 대표적인 이탈리아 디저트다.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판에 아예 '돌체(dolci-dolce의 복수형)'라고 되어있다. 돌체는 레스토랑에서만이 아니라 카페에서도 먹을 수 있다.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는 아침 메뉴, 크루아상은 버터만으로 구운 것보다 달콤한 과일이나 초콜릿 잼을 넣은 것이 훨씬 많다. 




약 열흘 정도


약 열흘이라는 시한부를 선고받았다는 이 음식 역시 나의 슈퍼바이저 P의 생일 기념 점심 회식에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식사를 마쳤으니까 돌체를 먹어야겠지? 다들 프리톨레(fritole) 먹어봤어요? 며칠 뒤면 다 사라질 텐데." P는 우리 세 명을 한 명씩 눈을 맞추며 물어본다.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눈썹을 완만한 사람 인(人) 자로 만들며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이날 식전 음식(antipasto)으로 먹었던 생선 요리 바깔라(bacala) 치케티도 신기했는데, 베네치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도 있다니! 마치 미지의 땅을 탐험하러 가는 것이 이런 설렘이었을까. "다들 안 먹어봤군요. 그럼 우리 돌체는 여기 말고 회사 근처 카페에서 먹읍시다. 나는 그 가게도 단골이에요."


    레스토랑을 나와 걸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카페에 도착했다. "본 죠르노!" P는 찡긋 눈웃음으로 바리스타와 인사한다. "짜잔~ 이게 프리톨레(fritole)에요. 혹은 프리텔레(frittelle, frittella 복수형)라고 합니다. 베네치아 카니발(Carnivale di Venezia) 기간에만 파는 디저트예요. 카니발이 끝나면 감쪽같이 사라져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죠." P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진열장에는 동그랗게 생긴 빵이 커다란 그릇에 눈송이처럼 한가득 쌓여있었다. 제법 귀엽게 생겼다. 베네치아에 와서 '튀긴' 돌체는 처음이었다. 디저트는 오븐에 굽거나 푸딩, 크림 종류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들 먹을 거죠?" 배가 불렀지만 이 달달함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희 프리톨레 4개 하고, 음, 다들 커피는?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진열장에 놓인 프리텔레(frittelle) / 이미지 출처: Urban Adventures


    이날 선택한 프리톨레는 역시 오리지널! 에스프레소와 함께 나온 프리톨레를 한 손으로 살짝 움켜쥐었다. 우리나라 찹쌀 도넛 정도 되는 크기의 빵이다. "튀겨서 슈가파우더를 뿌린 베네치아 전통 디저트예요. 먹어봐요." 에스프레소에 얼른 설탕 한 봉지를 넣고 휘휘 저은 다음 프리톨레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오, 맛있다! 촉촉하네요!" 기름에 튀겼다고 했는데, 기름기가 느껴진다기보다는 파운드케이크처럼 부드럽고 촉촉했다. 안에는 건포도가 들어있다. 속을 채우는 크림이나 다른 재료가 없이도 달달했다. 우리나라 찹쌀 도너츠나 통영 꿀빵과 가까운 맛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보다는 덜 쫀득쫀득하고 케이크처럼 촉촉하다. 부드러움이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식감이다.




왜 열흘 뒤에 사라질까?


붕어빵처럼 추운 겨울에 호호 불며 먹는 빵도 아니고, 베네치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빵이라는데, 왜 베네치아 카니발 기간에만 팔고 더 이상 팔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게 '전통'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경주 황남빵은 전국 각지로 배달도 되는데, 이건 무슨 마케팅 전략인가 내심 궁금했다. 연간 관광객이 약 2천만 명! 내가 카페 주인이라면 남들 안 만들 때 만들어서 파는 게 이득이지 않을까? 그러면 엄청난 수익을 가져올 텐데! 더구나 다른 가게에서 아무도 만들지 않는다면 독점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그렇다면, 금전적 보상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뜻일 텐데. 그게 뭘까? 베네치아 카니발 기간은 1월 말이나 2월 중순 사이의 10일~15일 정도. 카니발은 우리가 쓰는 달력이 아닌 그리스도교의 교회력에 따라 매년 날짜를 정한다. 그리스도교의 사순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을 기준으로, 10일~15일 정도 전부터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가 카니발 기간이다. 즉, 사순시기가 시작하는 전날까지 카니발을 즐기고, 그다음 날부터 부활절까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여 사순시기를 보낸다. 그렇다면, 카니발 기간에만 먹을 수 있는 프리톨레는 사순시기를 시작하기 전 베네치아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허락한 특별한 달콤함이 아닐까? '튀긴 음식은 다 맛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돌체'에 적용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사순시기 동안 인생의 즐거움 중의 하나인 돌체를 먹지 않음으로써 부활을 묵상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오롯이 나의 추측이다.




눈에 보일 때 먹어야지 망설이다가 사라진다구!


그 주 주말, 이제 곧 볼 수 없는 프리톨레를 먹기 위해 소소한 '카페 투어'를 나섰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모든 것은 타이밍, 우연은 곧 필연이라고 했던가. 여기저기 발 닿는 대로 걷다가 손발이 차갑게 얼게 된 나는 눈에 들어오는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프리톨레 이거 한 종류인가요?" 필립의 말에 따르면, 건포도가 들어있는 오리지널 말고도 크림이나 초콜릿 잼이 들어간 게 있다고 했는데. 이 가게에는 오리지널 한 종류였다. 하나를 사서 후다닥 먹었다. 역시나, 맛있었다.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바로 다른 카페를 찾아 나섰다. "본 죠르노." 카페 주인은 푸근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였다. 진열장을 보니 프리톨레가 세 종류나 있었다. "하나씩 주세요!" 세 종류를 한 번씩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 손가락을 세워 1개씩이라고 표시했다. 프리톨레가 담긴 봉투를 들고 근처 공원 벤치에 가서 앉았다. 겉 보기에는 다 똑같이 생겼는데, 과연 무슨 맛일까? 두근거림과 함께 하나를 꺼냈다. '음~' 커스터드 크림이 가득 들어있었다. 두 번째 프리톨레에는 초콜릿 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커스터드 크림과 초콜릿 잼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다.


    마지막은 뭘까? 한 입 베어 무니 연한 갈색의 크림이 보인다. '뭐지, 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무슨 맛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이 맛, 너무 궁금했다.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뭔가 목구멍이 살짝 뜨끈해졌다. 순간 깨달았다. '이거 술이구나.' 술을 넣은 프리톨레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술인 줄 알았으면 어떤 술인지 물어볼걸.' 내가 프리톨레를 산 카페를 다시 찾을 수 없는 길치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카니발이 끝난 다음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가는 카페마다 들어가 진열장을 들여다봤지만 프리톨레는 없었다. 언제 여기 있었냐는 듯 그 자리와 가격표조차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다. '더 먹어둘걸.' 이미 떠난 후에 후회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후회해버렸다. 그런데, 프리톨레 말고도 다른 카니발 디저트가 두 개 더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다음번에는 세 종류 다 먹어야지!





* 프리텔레 이미지 출처: Urban Adventures(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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