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 온 지 3주 가까이 되도록 집을 구하지 못했고 동료 J의 집에 얹혀살았다. 그녀는 붙여두었던 싱글 침대를 분리해서 하나를 내어줬다. 동료와 같이 산 덕분에 회사에 빨리 적응한 것은 사실이지만 J의 집은 내가 들어온 순간부터 수용 인원을 초과한 상태다. 나를 포함해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총 네 명이다. 넷이서 공유하는 공간은 작은 부엌 1개, 화장실 1개, 그리고 신발장에 가까운 작은 거실 1개.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에는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한 타이밍을 잘 봐야 한다. 언제 화장실을 사용할지 서로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지만 계획에는 항상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늦잠을 잔 사람이 있으면 그날은 발을 동동 굴리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부엌에서 동시에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최대 3명이다. 그동안 서로 많이 친해졌지만 모두의 편의를 위해 얼른 내 집을 구해 이사를 해야 했다.
세계적인 베네치아 축제 카니발(Carnevale di Venezia)이 열리는 시기인 2월은 몇 달 전부터 관광객을 위한 숙소도 꽉 차있는 상황이다. 운이 좋으면 에어비앤비를 통해 장기 임대를 협상해볼 수도 있지만 1월엔 꿈도 못 꿀 일이다. 최대한 빨리 집을 구할 방법은 페이스북 단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쉽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집을 구하는 것은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방을 내놓은 사람들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집을 보러 올 사람들을 고른다. 그리고 일정 기간을 정해 집을 보여주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모여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가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일종의 면접 전형인 것이다. 그들은 논의를 통해 집을 보러 온 사람들 중 함께 살 사람을 결정하고 다시 페이스북 메시지로 알려준다. 이렇다 보니 내가 방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바로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셰어 룸보다는 싱글룸을 구하는 게 쉬웠다. 현지인들은 방에서 나랑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이제는 셰어 룸이든 싱글룸이든 상관없으니 아무 집이나 구하기만 하자는 심산으로 집을 알아본 적이 있다. 점심을 먹고 페이스북을 한참을 들여다보던 중 회사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집을 발견했다. 게다가 월세도 다른 집에 비해 절반 정도로 저렴했다. "싱글룸인데 270유로라는데?" 나는 집을 보고 싶다고 쪽지를 보냈다. "월세가 그렇게 싸다고? 어디 봐봐." 동료들은 믿을 수 없다며 어떤 집인지 보여달라고 했다. 모니터 앞으로 모여든 동료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다들 이 집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 이 집 알아. 이 집주인 완전 베니스의 상인이야. 이 집 진짜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려봐, 좋은 집 나올 거야." 나보다 먼저 베네치아에 온 동료들은 집을 알아보면서 이 집에 가본 적이 있는데 저 가격이 정말 비싸게 부른 것이고 한참 낙후된 집이라는 것이다.
월세도 월세지만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 방이 운하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방은 다세대주택 1층 집에 있는 방이었는데 창문을 열면 바로 운하가 보였다. "나는 운하가 보이는 집 완전 마음에 드는데. 창문 열면 물소리도 들리고, 밤 되면 운치도 있고.""그럴 것 같지? 내가 그 집 가봤는데 창문 열면 하수구 냄새나더라. 몰랐지? 그 집 가보고 깜짝 놀랐잖아. 환기도 잘 안되더라고." 운하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창문 열어서 환기를 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보트가 지나다니니까 창문을 열면 하루 종일 시끄럽다는 것이다. 더구나 물이 만조가 되는 아쿠아 알타(aqua alta)때가 되면 출입문과 창문 가까이 수면이 올라와 대비를 해야 했다. "리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또 있어. 운하 근처면 모기가 엄청 많아. 물가잖아. 창문 못 열어놓을 거야.""그래서 환기가 잘 안되나 보네. 초겨울 날씨인 2월에도 모기가 있는데 더워지면 엄청나겠지?" 베네치아의 모기는 추운 날씨에도 강했다. 결국 물가에 있는 집은 포기했다.
마음이 급하면 후회하는 결정을 하기 쉽다. 동료들은 그런 나를 걱정했다. "리지 야, 꼭 창문이 있는 방으로 구해. 창문 있는 방이 좋아. 왜냐하면 대부분의 집에는 에어컨이 없어. 3월부터 더워질 텐데 창문 없으면 큰일 난다." 내가 J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지냈던 호텔에서는 히터도 에어컨도 있었다고 덧붙이자, 다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다.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는 에어컨이 있을 텐데 가정집에는 잘 없어." 그렇다면 내가 살게 될 집도 에어컨이 없을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에어컨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럼 1층 집은 운하랑 가까우니까 별로라고 했으니 높은 층일수록 좋겠네?""그렇지. 높을 층일수록 쾌적할 확률이 높겠지. 창문이 있다면 환기도 잘 되고. 윗 층에서 베네치아 시내를 바라보는 게 더 운치 있을 거야." 그때 J가 한 가지를 덧붙였다. "리지야, 우리 집에 들어오던 날 기억하지? 높은 층일수록 좋은데 대신 엘리베이터가 없어." J의 집으로 들어가던 날 계단 1층에서 4층까지 캐리어를 옮기고 근육통으로 며칠을 고생했었다. 그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데다가 하필 나선형 계단이라 캐리어를 옮기는 데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렸다. 사실 집을 구해서 이사를 가게 되면 그 집에서 캐리어를 내리는 일도 걱정이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5층 정도인데 대부분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러니까 높은 층일수록 쾌적하고 좋은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걸어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J의 말을 듣고 나니 더 헷갈렸다. "그럼 낮은 층이 좋다는 거야, 높은 층이 좋다는 거야?""정답은 없어. 선택은 너의 몫이지." 어휴, 이렇게 조건 따지다가 진짜 집을 못 구하는 게 아닐까 심란했다.
집은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는 곳이다. 동료들은 하루를 자더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방을 구하라며 다급해진 내 마음을 다독여줬다. 결국 나는 베네치아 카니발이 끝나고도 한참 뒤인 3월 초에 방을 구했다. 50군데도 넘는 집을 보러 다니고 운 좋게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끝에 구한 내 방은 예쁘고 쾌적한 싱글룸이다. 큰 창문이 있고 창문으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방에는 라디에이터도 있다. 다세대주택 4층에 있는 우리 집에는 네 명의 대학생과 귀여운 고양이가 함께 산다. 대신 내가 포기한 것은 에어컨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통근시간이다. 동료들에게 집을 계약했다고 하자 축하를 해주었다. "그런데 집이 회사에서 걸어서 50분이나 걸린다고?" 그리고는 이내 농담을 던진다. "리지네 집이 세상 끝에 있는 집이네." 그 뒤로 동료들은 내가 집에 갈 때마다 세상 끝에 있는 집까지 열심히 가라며 농담 같은 응원을 해준다. "아니야, 우리 집 진짜 좋아!" 누가 뭐래도 나는 두 다리 쭉 펴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내 집이 좋다! 그 집이 세상 끝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