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글에 대한 고찰.

by cheers 헤나

나는 왜.

뭔가를 써보겠다고 자판기를 두들기고 있나?

나는 작가는 당연히 아니고 심지어 문과도 아닌 이과생에 공대 출신에다가 딱딱한 컴퓨터를 다루는 개발이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여자사람이다. 내가 들어도 나의 백그라운드는 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내가 쓴 글이 볼품없을지 몰라도 글을 쓰는 내 모습은 결코 볼품없지 않다. 나는 글을 쓰는 내가 좋다. 언젠가 남겨놓은 과거의 내 흔적을 읽어 내려가는 일도 좋아한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끄적여 놓은 글의 시점이 그때의 나이 치고는 꽤 괜찮은 글을 발견하면 더 좋다.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싸이월드 시절부터 나는 미니홈피 일기장에 항상 뭔가를 끄적여대었다. 소위 말하는 오글거리는 류의 감성글을 그 나이에도 꼭 한두 줄을 남기곤 했다. 소심했던 어릴 적의 나는 일기인 척, 못다 한 말을 일기로나마 해소하곤 했다. 못된 친구에게 하는 말도 있었고, 짝사랑에게 하는 말도 있었고, 나 자신에게 하는 말도 있었다. 사뭇 진지하거나 의미심장해 보이는 몇 줄을 일기장에 써놓으면, 찾아와서는 댓글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따위의 비웃음을 남발하는 불청객이 꼭 있었더랬지. 그 불청객은 베프들이었기에 같이 웃어대며 쿨한 척을 해야 했는데, 나는 그게 속으로 참 속상하고 남몰래 얼굴이 벌게지곤 했다. 친구의 댓글을 삭제하기엔 뭣하니 일기글은 슬쩍 비공개로 돌려버리고 그랬다. 어린 맘에 상처를 받으면 더 이상 공개글로 남기지 않고 비공개로 혼자만 간직할 법도 한데, 나는 며칠이 지나면 또 몇 줄을 끄적거리다가 등록하시겠습니까? 예. 버튼을 누르곤 했다. 모르겠다. 글이라는 거. 쓰는 자체에도 의미를 두고 있지만,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은근하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싸이월드 일기장으로부터 시작된 끄적임은 이어져서 메모장, 블로그, 인스타그램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최근에 시작한 브런치에 글을 쓸때도 과거의 내가 남긴 글들이 나의 새로운 글감이 되어주고 있다. 글을 쓸 때는 최대한 솔직하려고 노력하는데, 때때로 나라는 사람이 드러난 공개적인 공간에서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아서 아무도 모르는 부계정을 따로 만들어 그곳에 마치 대나무 숲처럼 속마음을 맘껏 외쳐대곤 했다. 본계정의 내 사진에 달리는 좋아요, 댓글 수 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부계정의 내 글에 반응하는 좋아요나 댓글 단 하나의 울림이 오래 남았다. 대나무 숲의 외침은 쌓이고 쌓여 어느새 100여 개가 넘어가는 글 조각들이 남았고 그것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노라면, 잊고 있던 과거의 나 라는 또 다른 인격체를 마주하는 것만 같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같은 맥락으로 누군가의 글을 읽는 일 또한 흥미롭다. 특히 기가 막히게 써놓은 글을 보면 동경에서 비롯된 모종의 질투 비스무리 한 감정마저 피어오르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멋지다. 대단하다. 감탄과 응원? 정도의 감정에서 끝이 난다면 글을 날고 기게 쓰는 사람들을 보면 멋지다. 부럽다. 어떻게 하면 저런 글이 나올까. 나도 언젠가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따위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쓰고 싶어진다. 필사로 시작한 끄적임은 내 생각을 써 내려가는 일로 이어진다. 탄식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언젠가 나의 글에 자연스레 인용해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지.


막 기억이 났는데 초등학생 때 개근상은 못 받았어도 다독상이란 걸 받은 적이 있다. 어릴 때 동화책을 한아름 끌어안고서 매일 밤 읽어달라고 조르던 아이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리 엄마가 구연을 참 잘했었는데.. 또 막 든 생각이 프로그래밍 언어도 하나의 ‘언어’라는 것에서 언어인 '글'과 관련이 있다. 쓰다 보니 내가 그렇게 글과 거리가 먼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서 자시가 다 된 시간까지 궁둥이를 붙이고 글이라는 것을 가지고 뇌를 굴려대고 있는 내가 보이길래. 너는(나는) 왜 이러고 있나. 물음표를 따라가 봤더니 조금 시답잖은 얘기들이지만 어찌 됐든 이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다.


결론은, 꾸준히 써 나가 보겠다. 자 이제 출근러는 잠자리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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