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울 수 있음을.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by cheers 헤나

미니멀리즘이 한창 이슈가 됐었던 적이 있다. 나는 지방 출신으로,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직장, 해외생활 등) 옮겨 다니며 생활을 한지 어언 5년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어느 한 곳에서 오래도록 머물 인간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로 정의했다. (당시의 내 기준에서 꽤 많은 것들을 버리고 최소한으로 생활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조금 안정적인 생활에 접어들면서 그 생각은 완전한 나의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최소한으로 살아왔던 것은 그 물건들을 마땅히 보관할 내 공간이 없었기 때문. 그것들을 보관할 만할 공간이 생기자, 나는 미친 듯이 사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다 읽지도 못한 책들이 수두룩한데 계속해서 사들이는 책들, 희한하게 옷장은 꽉 차있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어 사게 되는 옷들, 혼자 있을 때는 딱히 필요가 없지만 손님이 왔을 때 필요한 손님 접대용 물건들, 또 왜 그런 거 있잖아, 이 물건은 절대 다시 유용하게 쓰인다거나 할 일이 없어서 가지고 있어 봤자 이따금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 말고는 딱히 손 닿을 일이 없다는 걸 아는데. 알고 있지만, 소유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마음 한켠이 안도 되곤 하는 것들.. 이 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나 집콕시대가 도래하면서 공간은 한정적인데, 자꾸만 사들이고 싶은 욕구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 즈음, 친구에게 한 다큐멘터리 추천을 받게 되었다. 넷플릭스의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미리멀리스트, 조슈아 필즈 밀번 과 라이언 니커디머스]

딱 지금 나에게 필요한 주제였다. 미니멀리즘 다큐멘터리는 미니멀리스트 조슈아 필즈 밀번, 라이언 니커디머스 두 남자가 자신들이 미니멀리스트가 된 과정, 미리멀 라이프의 실천 방식과 그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나의 편견을 깨어준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미니멀리스트라 하면 일단 무조건 다 버려야 하고, 가지면 안 되는 줄 아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가지고 싶으면 가지라고. 가지되, 최소화하면 된다고 말한다.

"Just keep it. But make sure you minimize it afterwards."


비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미니멀리즘 붐이 일고 그 후, 무작정 따라서 물건을 막 버렸다가 얼마 못가 후회하면서 다시 물건을 사게 되는 부작용이 따르기도 했다. 누구는 여러 물건을 버리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하나의 좋은 (더 값진) 물건을 구매하느라 결과적으로 봤을 때, 되려 이중 소비를 한 것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물건을 버리기 전에 이 물건은 버릴 가치가 있는 물건인가? 부터 신중히 고민해 본 후에 버려야 한다. 나아가서 나는 어디까지의 기준으로 미니멀리스트 될 것인가? 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할 일이다. 무조건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맞게' 비워내야 한다.



[소비욕을 자극하는 광고 문구. 소비가 곧 나다.]

한 광고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소비는 곧 나다." 소비로 자아를 표현하는 시대. 나 또한 내가 가진 것들이 내 취향을, 내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한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소비로부터 얻은 만족은 아주 잠시 뿐이라는 데 있다. 불과 몇 달 전, 나 자신의 표현이라며 했던 소비는 지금 방구석 한편에 처박혀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일부 잘 사용하고 있는 물건도 있지만, 그 비중이 잘하지 못한 소비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다는 게 문제였다. 잘한 소비와 못한 소비, 그 기준은 무엇일까?

자칭 미니멀리스트라 칭하는 사람들이 촬영해서 올린 물건을 대량으로 버리는 모습, 모델하우스 마냥 깔끔해진 집의 모습 등의 미니멀라이프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 영상들을 보면 훤해진 모습에 순간적으로 나도 싹- 비워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면서도 내 공간을 한번 슥- 훑어보면, 아.. 그래도 난 이것들이 사라진 공간은 너무 외로울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감정이 드는 물건들은 적어도 지금은, 내게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다만 보이지도 않는 곳에 처박혀 있는지 없는지 기억조차 가물한 것들은 과감히 비워낼 필요가 있다.

결국 잘한 소비란, 나에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진짜 필요한 것에 소비를 하는 것. 그리고 그 물건을 잘 사용하는 것. 이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공간의 내 물건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잘 사용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딱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이 중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내가 그 존재를 알고 그로 인해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비우고 싶지는 않다.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것들이 참 많았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바로 가까이에 참 많더라는 것이다.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추자, 더 가지고자 하는 욕구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판단된 것들은 따로 분류해 두었다. 이것들은 일주일 동안 고민해본 뒤, 비워내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할 예정이다. 앞으로 내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히 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

이 다큐는 나에게 다시금 소유욕, 소유하고 있는 것, 그것들의 가치,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 주었다. 물건보다는 마음을 언제까지나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울 줄도 알아야 하고, 비우기 위해서는 다시 채워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나의 소비 습관과 가치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마음의 환기를 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비우고 채우는 대상이 물건이 되었든, 마음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결국 각자의 몫이다.




다큐의 한 문장이 진하게 마음에 남는다.

"사람의 정체성이 더 이상 하는 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가진 물건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건을 소유하거나 소비를 하는 것으로는 의미를 갈구하는 우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죠."


"Love people, use things, because the opposite never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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