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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04. 2020

흐르는 대로

시간이 내편이 되어주길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내가 태어난 해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엄마의 결정과 시도였지만 그것은 내 인생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줬다.

10월에 태어난 나는 호적상 2월생이다. 엄마는 내가 빠른년생들과 빨리 학교에 가기를 바랐다. 언니가 1월생이어서 학교에 일찍 들어갔고 엄마는 그게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입학원서를 넣으려던 시점에 나는 베개를 끌어안고 우유도 우-라고 발음하는 상꼬맹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의 7개월은 엄청난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나는 심지어 그냥 10월생 보다도 배움이 더딘 아이 었다. 나는 결국 엄마가 원하는 시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했고 내가 살아본 적 없는 7개월은 의미 없이 사라졌다.

자라면서 수없이 들어온 내 생년월일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 큰 불리함이나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일기장에 주로 내가 미숙하고 어리석다는 내용이 많았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때 매일 한강을 보며 귀가를 하던 날들이 있었다. 복숭아를 쪼개 놓은 것 같은 반달이 내가 탄 버스를 졸졸 좇아왔다. 달빛이 한강을 비춰 너울거릴 때 나는 시간의 흐름이 몹시 무섭다고 느꼈다. 그 당시 고작 이십 대 초반이었는데도 그랬다.


나는 그때 6개월을 준비했던 시험을 망치고 계획보다 1년을 더디게 걸어가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자꾸만 나의 무능함이 시간을 빼앗아가는구나 생각했다.

시간의 흐름에 조바심 내던 때마다 나는 무능했다. 아마 세월에 순응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시선에 순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바심의 실체를 알고 나서야 나는 좀 여유를 갖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고 흐르는 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중이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가 생긴다니, 시간을 더 많이 써버린 나이가 될수록 덜 조급 해지는 건 참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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