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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27. 2020

사랑과 로봇의 3원칙

사랑은 사람을 해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제는 단편소설을 읽고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작은 모임을 주최했다. 네 분이 참석한다고 메시지를 남겼고 실제로는 세분이 참석해주셨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에 수록된 <로봇>이라는 단편을 준비해 갔다.


그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여주인공은 서울 중심의 고층빌딩에 위치한 작은 여행사 직원이다. 그녀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여행사 사장에서 큰 빚을 지고 있고, 그로 인해 그 더러운 인간과 원치 않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녀는 인생이란 비오는 날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다리에 질척이는 누군가의 젖은 우산을 참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젖은 우산을 참아내던 그날, 순정만화에 나오는 남주인공 같은 그가 그녀를 따라온다. 그녀의 순진한 마음은 사회생활을 하며 다 해져버렸는지, 그녀는 그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바라보면 마음이 이상하다며 그녀의 직장까지 따라와서 함께 대화하기를 청한다. 그녀는 하는 수없이 그와 차를 마시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자신이 로봇이라는 말을 한다. 스스로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로봇의 3원칙을 지키며 살고 있을 뿐이라고.


로봇의 3원칙: 제1조,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된다. 제2조, 인간의 명령에 복종한다. 다만 1조에 어긋나는 경우는 제외한다. 제3조, 두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그녀는 스스로 로봇이라는 남자와 만남을 가지며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사랑을 나누던 도중에 격한 감정을 느끼고 그에게 사랑한다고 외친다.

그 후 그는 그녀를 떠난다. 그러한 격한 감정은 로봇의 원칙 제1조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내가 모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은 '사랑은 사람을 해하는가?', '어떻게 해하는가?', '해보다 득이 크다고 할 수 있는가?'였다.

내 경험상으로는 모임의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주로 사랑이라는 주제는 늘 사랑받는 안건이었다. 누구라도 한 마디씩 할 말이 있었고, 철학은 없더라도 어느 정도 추구하는 바는 있었다.

그러나 세분 중에 유독 한분이 침묵을 지키셨고, 나는 대화의 형평을 위해 그 여자분에게 질문했다.


"사랑이 사람에게 해를 가한다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사랑에 대해 논하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비를 흠뻑 맞은 맹수의 것과도 같았다.


사랑은 저렇게 사람을 해하는구나.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지 않고도 그녀의 대답을 알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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