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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02. 2020

하지 못한 말

아오 그때 내가 그 말을 했어야 되는데!!

Esprit de l‘escalier


불어에는 '계단의 재치'라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연회장을 나와서 계단을 내려오며, 아까는 말하지 못한 재치 있는 말이 생각날 때 느끼는 그 안타까움. 그것이 바로 계단의 재치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하지 못 해서 가장 안타까울까? 재미있는 말로 빵터트릴수 있었던 기회? 사실 우리가 개그맨이 아니고서야 재밌는 말을 못 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후회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감사인사나 사과? 이러한 말들은 늦게라도 전달만 된다면 충분히 마음의 빚을 만회할 수 있다.


우리가 진짜 괴로운 계단의 재치는 바로 상대에게 한방 먹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

며칠 전 주자창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어떤 젊은 남자가 자기 자리에 주차를 했다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당신 뭔데 여기에 주차를 해???’라고) 나에게 무안을 줬다. 상당히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주차를 잘못했다는 생각에 조용히 사과를 하고 차를 뺐다. 근데 뒤돌아 생각하니 그게 그 정도로 욕을 먹을 일인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서 따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차 빼면 될 것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아저씨!!!!!!” 그날 내가 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 일뿐만 아니라 살다 보면 그 개자식이 나를 바보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부글부글할 때가 있다. 어쩔 땐 ‘마지막에 내가 이 말만 했다면 정말 속이 시원했을 텐데’라는 생각에 몰입해서 그 상황을 복기하고, 복기하고.. 그날 밤에는 그 상황 속에 다시 들어가 또 한 번 속시원히 말하지도 못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한방 먹어서 잔뜩 약 올라하는 상황. 그러므로 내가 괴로워하는 것은 상대에게 협조하는 꼴이다. 그러니 상대에게 날리지 못한 펀치에 대해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약 오르는 상황이 떠올라도 그것을 잊을 수 있다고 믿자.

뿐만 아니라, 그들의 판단은 그들의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병신으로 남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자로 남더라도, 과거의 순간에 대한 그들의 판단은 우리가 손쓸 수 없다. 내가 통제 불능한 것에 마음 쓰지 말고, 미래 상황을 대비하거나 그것도 어렵다면 그저 나는 ‘내 것인’ 내 감정만 돌보면 된다. 역시 마인트 컨트롤로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별로 없다.

늘 모두가 똑 부러지게 적재적소에 펀치를 날릴 수 있다면 계단의 재치라는 말이 왜 있겠냐 말이다. 그러나 하지 못한 말 때문에 후회로 마음 쓰는 일은 그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함께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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