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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Feb 05. 2021

뮌헨, 낮에는 혼자 걸었고 밤에는 서로 말을 걸었다.

혼자 가서 함께 했던 뮌헨 여행기

뮌헨에 도착했을 때 나는 혼자였다. 한국에서 혼자 떠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전날 브뤼셀에서 이슬이가 한국에 돌아가버렸다. 처음부터 혼자였다면 이런 어색함이 없었을까 혼자 중얼거렸다. 혼자서는 자주 혼잣말을 한다.

뮌헨 중앙역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한국에서 프린트해놨던 지도를 꺼내 들고 CVJM(YMCA) 호스텔을 찾아갔다.  당시(2012년) 길을 찾기 위해서는 구글맵을 켜는 것이 아니라 종이지도를 들고 현 위치부터 확인해야 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뮌헨 시내의 첫인상은 활기차기보단 차분해 보였다. 시청사 근처에 비정기 꽃시장이 서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장터를 철수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꽃을 사는 사람들은 없고 상인들만이 느릿느릿 천막을 걷어내고 있었다.


유럽여행을 준비할 때 나보다 먼저 다녀온 지인들은 모두 독일이 심심한 나라라고 했다. 더구나 프랑크푸르트와 뮌헨을 다녀온 독어독문학과 친구까지도 그중에 한 명이었으니... 그 때문에 나는 독일에서 딱 하나,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이라는 웅장한 성만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디즈니 성의 원형이라는 궁전을 보려고 뮌헨의 숙소를 하룻밤 예약한 것이다. 지금 다시 그때를 추억해보니 그 성 하나만 보고 독일을 떠나겠다는 것은 무척 극단적인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뮌헨은 생각보다 하룻밤만 보내기에는 즐거움이 넘치는 도시였다.

퓌센 노이슈반슈타인 성


호스텔 로비에는 중요 관광지와 지하철 노선표가 나와있는 시티맵이 각국 언어별로 쌓여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어 맵은 없었다. 유명하다는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한국어가 들려오고, 한국 대학생들이 방학이면 한 달씩 유럽을 돌아다니는데도 한국어 맵이 없다니? 현관에 게스트를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화려한 색감으로 시끄럽게 두 눈을 사로잡아도, 한국인인 나로서는 조금 덜 환영받는 느낌이었다.


독일어는 전혀 읽을 수 없으니 영어로 된 맵을 집어 들었다. 생각해보면 독일어는 사람을 꽤나 당혹스럽고 무력하게 만드는 언어이다. 물론 나처럼 영어만 주구장창 배웠고 독일어는 전혀 못하는 사람에게 국한된 말이지만.


역시 내가 전혀 읽을 수 없는 아랍어나 태국어, 베트남어와 독일어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것들은 생김새에서부터 장벽이 높아서 범접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아예 읽어볼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독일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알파벳을 가지고 있다. 영어를 배운 누구라도 독일어를 만난 순간 '자 어디 한번 어떻게 읽히나 볼까?' 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조금도 비슷하게 소리 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독일어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발음이 얼마나 많은가. 성대 저 안쪽을 긁으며 가래를 모으는 것 같은 소리가 있는가 하면, 바람소리만 힉힉 내는 것 같은 발음도 있다. 사용언어에 따라서 발성기관이 후천적으로 변한다고 하던데, 독일인은 얼굴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대 모양까지 우리와는 매우 다르게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 독일인의 성대 모양에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뮌헨의 오래된 맥주집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도착했다. 역시 혼자 여행을 하면 이런저런 생각을 혼자 골똘히 해볼 수 있다는 것은 좋다.


‘아 이제 그런 좋은 시간은 여기까지’


짧은 뮌헨 여행에서 나에겐 계획이 단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지상 최대의 펍, 호프브로이 하우스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혼밥도 잘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거대한 호프집에 혼자 들어가려니 무척 어색해서 입구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여기까지 와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호프브로이 하우스
호프브로이 하우스 입구


호프브로이는 맥주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장소이다. 넓은 홀에 위치한 거대한 테이블에서 각국의 여행자들과 쉽게 대화하며 친구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특별히 사랑스럽다. 이곳에서는 훌륭한 맥주가 계급 간의 모든 차이를 없애 준다." -블라디미르 레닌


나는 여행책자에 쓰인 설명을 괜히 몇 번 더 읽어보았다. 가뜩이나 영어도 유창하지 않은데 혼자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에 입구에서 한국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호스텔 로비에 한국어 맵은 없어도 역시나 유명 관광지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어김없이 나타나니까.


잠시 후 예상대로 한국인 두 명이 호프브로이 입구로 다가왔다. 나보다 세네 살 정도 어려 보이는 여대생들이었다. 찾던 장소를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이고 있길래 나는 재빨리 다가가 말을 시켰다.


“저기.. 여기 들어가서 식사하실 거면 저도 같이 들어가도 될까요? 저 혼자 여행 중인데 맥주집에는 혼자 들어가기 부담스러워서요”


그 친구들은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고 우리 셋은 호프브로이로 들어가서 크고 긴 테이블로 안내받았다. 호프브로이의 내부는 엄청나게 넓었다. 지상 최대의 펍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체리색 나무 벽면에 나무 몰딩이 장식되어 있고 하얀 천장은 아치형으로 기둥과 곡선을 이루고 있어서 동굴에 들어온 기분이 약간 들었다. 한쪽에서는 악단이 독일 민요 같은 것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내부가 워낙 시끌벅적해서 거리가 좀 떨어진 테이블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파란색 꽃무늬 테이블보가 씌워진 우리 테이블에는 스위스에서 여행 온 남자 두 명과 미국에서 여행 온 커플, 독일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미국 아저씨 한 명과 우리가 있었다.


나는 스위스 친구들에게 곧 내가 여행하게 될 인터라켄에 대해 물어봤고, 미국 커플은 내게 왜 한국인들은 사진 찍을 때 브이를 하냐고 물어봤고, 미국 아저씨는 오바마가 싫다고 했다.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것들만 말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만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1리터짜리 거대한 맥주잔으로 생맥주와 흑맥주를 먹었고 덕분에 화장실도 여러 번 다녀왔다. 하얀 소시지와 학센, 그리고 접시 크기보다 훨씬 큰 프레즐도 먹었다. 역시 입구에서 한국 친구들에게 말을 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나는 펍을 나왔다. 즐거운 시간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쉬웠지만 호스텔에 통금시간이 있어서 길바닥에서 자거나 밤새워 술집을 전전할 것이 아니라면 어서 호스텔로 돌아가야 했다. 나도 숙소에 통금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웬 통금???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12시 반까지 라니..! 그래도 나는 반발심이나 후회보다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고자 하는데 더 마음을 썼다. (호스텔의 통금 때문에 뮌헨을 더 안전하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뮌헨의 밤풍경

호프브로이에서 호스텔로 가는 길은 도보로 20분 정도였다. 나는 또다시 한 손에 작은 시티맵을 들었다. 가는 길은 어렵지 않지만 모든 걸 확실히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스트리트 이름을 확인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길을 잃었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20분 동안 네 명이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첫 번째는 술이 취한 아저씨였는데, 길을 잃었냐고 묻기에 고맙지만 아주 잘 찾아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두 번째도 머리가 좀 휑한 아저씨였다. 역시 길을 잃었냐고 물었고 같은 대답을 했다. 정말이니?라고 한 번 더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갈길을 갔다.


세 번째는 좀 어려 보이는 남자애였는데, 대뜸 내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숙소에 가는 중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댄싱 클럽에 간다고 했다. 그러더니 함께 가겠냐고 물었다. 뮌헨에서 헌팅이라니! 무척 귀엽게 생긴 애였지만 아무래도 따라가는 건 좋지 않아 보였다. 거절했더니 내 번호도 물어보고 포옹도 한번 하겠다고 했다. 그 애는 나를 한번 꼭 껴안고는 어딘가에 있을 댄싱 클럽으로 신나게 걸어갔다.


네 번째는 나와 같은 관광객이었는데 그 남자는 약혼녀랑 여행 중이었다. 약혼녀는 방에서 쉬고 있고 자기는 소화가 안 된 것 같아 혼자 산책 중이며 내가 길을 잃은 것 같아 보여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고 그에게 네 번째로 말했다. 그러자 지도에 나온 내 숙소와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이 같은 방향에 있다고 괜찮다면 함께 걷자고 했다.


그와 나는 함께 걸었고 더 이상은 아무도 나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나는 숙소에 무사히 통금시간 내에 도착했고 네 번째 나에게 말을 시켰던 그 남자와 서로 행복한 여행을 빌어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아는 게 늘어나면서 무서운 게 많아진 지금이라면 그렇게 낯선 사람들의 물음에 웃으면서 일일이 다 대답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어쨌든 그날은 나 역시도 낯선이들에게 저녁 내내 말을 걸고 있었다. 혼자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것인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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