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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Apr 17. 2021

스위스 인터라켄에도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네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벚꽃이 피고 질 무렵이면 내 플레이리스트는 (벚꽃 연금에 동참하듯이) 버스커버스커가 몇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꽃송이가'라는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네~'라는 가사말은 어쩐지 그 순간 나를 스위스의 관광도시 인터라켄으로 데려가 준다.


버스커버스커가 첫 정규앨범을 내던 2012년에 나는 처음으로 스위스 여행을 떠났다. 경험도 부족하고 메타인지도 떨어지는 시절이라, 혼자 여행이 스스로에게 지독히도 안 맞는다는 것을 모르고 떠났던 나 홀로 첫 유럽이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터라켄(Interlaken)은 두 개의 호수 사이에 자리한 관광도시였다. 나는 호스텔이 밀집해있는 인터라켄 서역(West station)에 도착했다. 청명한 하늘에서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낙하산들이 조그만 사람들을 매달고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다. 다른 한쪽으로는 Top of Europe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요흐 봉우리가 보였다. 그것은 내가 인터라켄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였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스위스에 두 번째 방문하고 나서야 그 뚜렷한 봉우리를 봤던 것이 2012년에 얼마나 운빨 터지는 일이었는지 겨우 알게 되었다.


내가 3일간 머무를 인터라켄의 숙소는 한인민박집이었다. 그것은 돈 없는 대학생이 빠듯한 예산으로 악명 높은 스위스 물가를 방어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한인민박집에서는 한국식 아침식사를 먹을 수 있었고, 원한다면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하고 저녁까지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이층 침대가 두 개 놓인 도미토리에는 한국인이 두 명 있었는데,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매라고 했다.


그날 저녁 민박집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물론 그날뿐만 아니라 매일매일이 파티였을 것이다.) 테이블에는 뉴질랜드에서 온 두 자매와 한국에서 온 대학생 남자들이 서너 명 있었다. 여행정보와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유용한 시간이었지만, 청춘남녀가 모여 술을 마신다는 것은 유용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즐거운 것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그는 본인을 한의대생이라고 소개했다. 공부를 쉬면서 본인이 선택한 길이 맞는지 고민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달의 유럽여행이 그에게 해답을 찾아줄 수 있었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우리는 민박집 냉장고에 있는 병맥주를 야금야금 꺼내 마시며 잔잔히 흐르는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들었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네~


"이 노래 무슨 내용인지 알아요?"

그는 어서 설명할 기회를 달라는 듯이 눈빛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단대 호수 걷고, 배드민턴 치고,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봄에 데이트하는 내용 아닌가요?"

나는 별생각 없이 가사를 나열하며 대답했다.


그는 그 이상의 것이라며 자기 얘기마냥 열심히 노래를 해석해주었다. 단대 호수를 걷자고 부르고, 배드민턴 치자고 꼬시면 한 번도 안된다는 말이 없지만, 만나면 '꽃송이가 피었구나'라고 겉도는 얘기만 하는 사이.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그 사람에게 특별할 수 있을까? 다가가기는 쉬워도 다가가서 특별한 존재가 되어 사랑으로 맺어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었다.


다음날 그는 인터라켄을 떠났다.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를 여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아침부터 인터라켄 동역에서 새빨간 기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에 올랐고 그곳에서 새빨간 신라면을 먹으며 새빨간 스위스 국기가 꽂힌 봉우리를 구경했다.


그리고 인터라켄을 떠나기 전날 저녁, 민박집에 그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이탈리아의 소도시가 너무 볼 게 없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함께 스위스의 밤하늘을 보았다. 청정자연 스위스 하늘에 생각보다 별이 많지 않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올봄에도 예외 없이 '꽃송이가'를 배경음악으로 흐드러진 꽃길을 걸었다. 다가가기는 쉬워도 다가가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것은 스위스를 여행했던 20대 때나 30대 때나 마찬가지이고, 아마 좀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 그 어려운 것들은 무척 황홀하고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꿈꾸게 된다. 봄이 올 때마다.




꽃송이가 -버스커버스커

배드민턴 치자고 꼬셔

커피 한 잔 하자고 불러

동네 한 번 걷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거리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 거라

그게 어려운 거야

맛있는 거 먹자고 꼬셔

영화 보러 가자고 불러

단대 호수 걷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거리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 거라

그게 어려운 거야

좋아 좋아 하모니카 솔로

꽃송이가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거리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 거라

그게 어려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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