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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Dec 28. 2020

2020년 나의 기록:쓰는 인간의 탄생

나는 왜 쓰는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큼지막하게 한 문장을 적으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종이에 '교실에 앉아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하는 존재'라고 썼고 그 고민은 십수 년간 계속되고 있다.


물론 그 중간에 한동안은 그 질문을 잊고 살았다. '나는 누구인가'보다 더 중요한 척하는 질문들에 치여서. 때로는 내가 아닌 나를 소개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진짜 나'를 묻는 질문들이 사라져 가면서 내 존재 역시 희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던 시간들이었다.


2020년은 잊고지낸 바로 그 질문을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저녁노을처럼 나 또한 고정된 인간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의 나'를 적어내려가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길을 잃으면 누구나 지도에서 현 위치부터 찾는 것이니까.


쓰다보니 결국 글 쓰는 일은 마음이 쓰는일이라는 걸 느낀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이라는 것은 거짓 없는 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글을 쓸 때면 지난 일이야 어찌 되었든 앞으로 거짓 없이 살고자 늘 다짐한다.


그리하여 올해 나는 글 쓰는 존재였다. 돌아보니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꽤 틈틈이 썼다. 강아지 산책을 시킬 때나 길을 걸을 때도 나는 글감을 생각했다. 시간이 날 때면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쓰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나의 글은 완성되었다. 그런 글들은 대부분 헐거운 글들이었지만 내 인생의 빈틈을 채워서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고 있다.


2021년에도 나는 글 쓰는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왜 쓰냐고 묻는 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누구였는지, 누가 되고 싶은지 알기 위해서. 내 마음속의 지도를 만들고 원하는 방향에 도달하기 위해서. 더 좋은 마음을 가지고 거짓 없이 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마음들을 단단히 붙잡아두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쓴다.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형이상학적 고민을 하던 그 소녀는 성장판이 닫혀 어른이 되어서도 더 이상 키가 전혀 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성장은 키로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 고민의 수준은 성장했고 성장할 것이다. 이제는 나의 글쓰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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