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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01. 2020

케언즈 하늘의 구름 사이로

마법진 통과해본 적 있니?

호주 케언즈의 첫인상은 반짝이는 물의 도시였다. 아름다운 해안도시의 중심에는 바다와 만나 있는 애스플래나드 라군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21살의 배낭여행자였다.

'입장료는 어디에 내는 거지?'

나는 에메랄드빛의 수영장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로 걸어가서 라군을 구경했다. 바다 가까이에 커다란 열대어 모양의 조형물이 줄지어 서있었고 그곳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쾌적하고 예쁜 수영장이 공짜 일리 없다고 생각한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처음 본 친구들에게 입장료를 물었다.

"It's free. No need to pay."

나는 배낭을 집어던지고 얼른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수영할 줄 아는 나라. 그곳은 호주였다. 나는 두세 살짜리들도 다이빙을 하는 곳에서 소심한 물장구를 쳤다. 나는 물 공포증이 있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물놀이를 사랑하는 인간이었다. 미리 준비해 간 작은 조개 모양의 튜브가 큰 도움이 됐다.


케언즈 에스플래나드 라군


물에서 나와서는 처음 본 친구들과 뚱뚱한 모양의 VB맥주를 마셨다. 얘네는 안주도 없이 술을 잘도 마시네, 나는 생각했다. 술에 취할수록 나는 엉터리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 어쨌든 서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도 무방한 내용의 대화들이었다. (혹은 그랬길 바란다.)

둘째 날에는 스카이다이빙을 예약했다. 만천 피트 상공에서 자유낙하를 하다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액티비티였다. 바로 3일 전에 뉴질랜드에서 번지점프를 성공한 뒤라서 자신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비록 환불이 안된다는 사실 때문에 약간 억지로 오금을 저리면서 뛰긴 했지만.

나는 키가 아주 크고 곱슬머리인 호주 아저씨와 한 팀이었다. 나는 그를 뒤에 매달고, 아니 사실은 내가 그에게 매달려 만천 피트 상공에서 떨어질 것이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이렇게 말 그대로 생명을 내걸다니. 기분이 오묘했다. 나는 불의의 사고가 생겨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다소 으스스한 문서에 서명을 했고 죽지 않기 위해 안전교육을 받았다.

곱슬머리 아저씨는 작은 아시안 걸에게 활짝 웃으며 손바닥을 내보였다. 나는 좀 굳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20달러를 더 지불하고 신청했던 액티비티용 카메라가 그 모습들을 비디오에 담았다.

우리는 경비행기가 있는 장소까지 봉고차를 타고 갔다. 차 오디오에서 나오는 경쾌한 락 비트의 음악이 내가 지금 엄청나게 신나는 경험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경비행기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작았다. 조종사와 우리 팀 그리고 다른 한 팀, 5명이 경비행기에 올라타니 내부가 꽉 찼다. 경비행기의 엔진 소리와 공기저항으로 생기는 바람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때렸다. 나는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마을 전체가 레고처럼 보였다. 고소공포를 느끼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올라갔기 때문에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우리 팀이 먼저 뛰어내릴 것이다. 나는 지상에서 받았던 안전교육을 머릿속으로 상기했다. 어려운 동작은 전혀 없었다.

나는 곱슬머리 아저씨의 신호에 맞춰 손을 가슴 위에 엑스자로 얹으며 기체에서 하늘로 몸을 던졌다. 뛰어내린 직후에 나는 배운 대로 팔을 벌렸다. 우리는 구름 위에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살면서 가장 황홀한 경험을 했다. 내가 내려다보는 구름에 동그란 무지개가 떠있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무지개를 보면 원형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목격하다니. 우리는 무지개가 떠있는 구름 사이로 시원하게 낙하했다. 마법진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그 한 달간의 여행 중에, 아니 그 이후의 어떤 여행들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 직업이 파일럿인 분과 일에 대한 대화를 잠시 나눌기회가 있었다. 그분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직장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 직장이라는 곳이 바로 구름 사이를 가르는 비행기 조종석이라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수없이 많이 보았을 광경일 텐데도 그것은 볼 때마다 질리지 않는 황홀경을 주는 광경이 아닐까? 나는 내 경험에 빗대어 추측해본다. 매번 그분이 감탄할 조종석 바깥의 풍경에 대해.

우리는 언제 다시 비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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