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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03. 2020

열심히 계획하고 되는대로 여행하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여행법

모순된 말 같지만 나는 계획이 있는 즉흥적 여행을 추구한다.

이를테면 여행 전에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시간을 들여 여행 계획을 짠다. 그리고 여행지에서는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계획을 마음대로 수정한다. 그렇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가 있다.


성실하게 계획을 짜는 동안
여행지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내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1. 우선 도시에 유명한 관광지들을 모두 구글맵에 표시한다.

2. 그리고 관광지들을 하나씩 검색해서 그곳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주관적인 평가를 내린다.

3. 휴양지 여행처럼 특정 숙소를 위한 여행인 경우를 제외하고, 구글맵에 표시된 매력적인 장소들의 중심부에 있는 숙소를 검색해서 예약한다.

4. 관광지들은 되도록 직선거리로 루트를 짜서 왔던 길을 중복해서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하고,

5. 거리는 교통편을 검색하거나 구글맵에서 이동시간을 검색해서 계산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어떤 여행지가 더 매력적이며, 어디가 가장 접근하기 쉽고, 어느 시간대에는 어떤 곳에 가는 게 좋은지 머릿속에 입력해놓을 수 있다. 우선순위는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현명한 결정을 돕는다.


물론 이런 것들은 내가 본래 즐거워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는 여행에 관해서라면 처음부터 즉흥인 여행을 지양하는 사람이다. 준비된 상태를 강박적으로 좋아하는 것과는 아주 별개로, 여행의 설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 즉흥여행으로 나의 설렘을 건너뛰는 일은 내게 너무 아쉬운 일이다. 나는 최대로 8개월 전에 티켓팅을 해본 적이 있다. 8개월 내내 설레었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8개월 사이에 두 번의 여행은 더 갔었으니.. 어쨌든 계획을 짜며 여행지를 미리 보기 하는 것은 나에게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여행 계획을 열심히 짜는 것이 체질에 안 맞는 사람들은 자신이 꼭 포기할 수 없는 장소를 하루에 하나만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적당히 포기하는 여행은
순간을 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내가 열심히 정성 들여 계획을 짰다고 해서 계획표에 있는 모든 곳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그것을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라 불렀을 것이다.

나는 계획을 통해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장소를 하루에 한두 개만 정하고 나머지는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갔을 때, 보께리아 시장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내 생애 첫 랍스터를 먹었던 날이었다. 그곳은 타국 전통시장의 활기와 알록달록한 스페인산 과일들이 여행자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에 위치한 해산물 가게에 옹기종기 앉아서 먹고 마시는 시간이 나는 무척 즐거웠다. 그래서 우리는 몬주익 분수쇼를 포기해버렸다. 우리에게 그날의 최우선 순위는 바로 보께리아 시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숙소로 가는 길에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 있는 분수를 보며 몬주익 분수쇼를 대신했다. 초승달 아래의 분수 앞에서 비틀비틀 춤을 추며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보께리아 시장
까딸루냐 광장의 분수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은 아마 '내가 여기 언제 또 오겠어'하는 마음에서 오는 게 아닐까? 나는 그때마다 '다음 여행의 재미를 위해 아쉬움을 남겨두고 떠난다'라는 마음 가짐을 가진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지금 여행이 더 즐거워진다. 다음 목적지에 대한 압박이 없으면 지금 순간을 최대한으로 즐기며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여행만이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해야 할 방법이 아닐까? 성실한 계획 과정을 통해 얻은 정보들이 즉흥적인 선택에 힘을 실어주는 인생.

좋아서 저절로 되는 여행 계획만큼이나 인생 계획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성실하게 준비할 수 있다면 좋은 선택을 하며 살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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