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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04. 2020

같이하는 따로 여행

혼자인 듯 혼자 아닌 혼자 같은 여행

나는 ‘같이’ 여행하는 도중에 ‘따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며칠씩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중에 몇 시간 동안은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따로 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 너무나 감사하게도 여행 중에 친구와 싸워서 각자 시간을 보내야 했던 적은 없다. (남자 친구는 제외). 그저 첫 번째 ‘따로 또 같이’의 여행을 경험했던 이후로 그 기분과 감정이 강렬해서 이따금 그런 여행을 추구하고 있다.


나는 독립심이 강하고 씩씩해 보인다는 주변의 평과 달리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대학생 때 4주간 유럽 배낭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 출발해서 2주간은 둘이 함께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한국에 일이 있어서 먼저 입국을 하고 나는 나머지 2주를 혼자 여행했다. 그때 나는 메타인지가 상당히 떨어져서 내가 혼자서도 여행을 아주 만족스럽게 즐길 줄 알았던 것이다. 말 많은 나는 대화 상대가 없을 때 너무 외로웠고, 2주간 스위스와 이탈리아 어딜 가든 동행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때 이후로는 한국에 있어도 더럽게 외롭겠다 싶을 때만 혼자 떠났다. (어차피 외로울꺼면 여행지에서 외롭자.)

인터라켄에서의 외로웠던 식사. 심지어 피자인줄 알았는데 파이였음.


즐거웠던 ‘따로 또 같이’ 여행의 최초 기억은 홍콩을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마카오에서 매케니즈 요리를 잔뜩 먹고 홍콩으로 넘어온 날, 나는 체기로 속이 안 좋았다. 우리의 계획은 늦은 저녁에 란콰이퐁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며 클럽을 순회할 예정이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격이었던 란콰이퐁 클럽 투어를 나는 그날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호텔에 혼자 누워서 끙끙대다가 일찍 잠이 잤다.

아침에 일찍 깨어난 나는 속이 편안하고 상쾌한 기분이었다. 밤을 달려온 친구들을 호텔에 두고 나는 홍콩 거리로 나왔다. 어제 즐기지 못한 것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나를 체하게 했던 매캐니즈 요리

나는 무작정 셩완역에서 트램을 탔다. 시끄럽고 느린 트램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낯설고 설렜다. 읽을 수 없는 간판들 뒤로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낡은 건물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보이는 것마다 신기한 풍경들이었다.

나의 목적지는 코즈웨이베이였는데 트램은 갑자기 완차이 역에 서서 꼼짝을 안 했다. 누군가가 소리를 쳤고 트램에 탄 몇 안 되는 승객들은 짜증 난 기색도 없이 트램에서 내렸다. 나도 눈치껏 다 알아들은 척하며 트램에서 내렸다. 앞서가던 트램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트램은 내릴 때 요금을 내는 시스템이었는데, 아무도 내지 않고 내려서 나도 내지 않았다. 내가 탔던 트램 앞뒤로 길게 알록달록한 트램들이 줄지어 섰다. 마치 트램 박물관에 트램들이 수집되어 있는 듯한 진기한 풍경이었다.

심지어 요금도 내지 않고 이런 구경을 하다니! 그곳의 몇몇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문제를 나에게는 행운쯤으로 여기며 나는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그날 나는 완차이 맥도널드에서 맥 커피를 한잔 마시고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에서 친구들과 다시 만나는 것으로 따로 여행을 끝냈다.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줄지어선 트램

그때 나는 생각했다. 여행은 어찌 보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일이구나. 어린애들처럼 만나는 세상마다 새롭고 신기하고 그래서 재미난 일.

그날 혼자 사색을 하며 보냈던 그 시간이 나는 마치 엄마 몰래 발라보는 립스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려다니는 여행객이 아니라, 현지인 사이에 슬그머니 들어가서 나도 현지인 인척 해보지만 이것저것 신기해서 눈빛이 반짝이는 것은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별거 없는 혼자 여행이 강렬한 감정을 남긴 또 한 가지 이유는 다시 돌아와 만난 친구들이 반가웠기 때문일 것이다. 타국에서 약속을 잡고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경험은 흔치 않아서 더 반갑고 할 얘기 더 풍부해진다.

친구들과 오사카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마지막 날 오후를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나는 오사카 역사박물관을 구경하고 츠타야서점에서 다이어리와 엽서를 사서 도톤보리 근처에 앉아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글리코상 앞에서 쓴 편지

다시 만난 우리는 오코노미야끼를 먹으며 각자의 경험을 공유했다. 한 친구는 숙소 근처를 구경했는데 아주 뜬금없는 곳에 클럽이 있었다고 했다. 다른 한 친구는 난바 오렌지 스트리트에서 쇼핑을 하다가 일본인 직원과 친해져서 페이스북 친구가 됐다고 했다. 나도 신이 나서 내가 박물관에서 얻은 정보를 친구들에게 말해주었다. 같은 도시에서도 각자에게 맞는 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오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우주만물과 어떤 상황에도 적용되는 중용의 법칙이 여행이라고 피해 갈 수 있을까?

적당히 붙어 다니고 적당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면 더 충만한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따로 또 같이'여행은, 혼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혼자가 두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몇 시간만이라도 반드시 경험해보길 추천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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