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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마개, 내 수영 자신감 버튼

원인을 알기위해 공포속으로 머리넣기

by 미쓰한

공포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굳이 무서운 소리가 들리는 깜깜한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아 왜 저길 들어가냐고!!"라고 생각해 본 적 있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속에 들어가 있어도 무서울 판인데 저런 미친 행동을 하다니, 나는 주인공들이 약간 다들 변태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필시 귀신이나 괴물이 나와야 하는 스토리에 해당하는 얘기이고, 어쩌면 인생에서는 변태가 아니더라도 공포를 마주하는 것이 삶을 발전시키는 좋은 자세일 수도 있겠다. 깜깜한 미지의 공간 속에 사실은 작은 고양이나 바람에 쓰러진 빗자루 같은 것이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니까.


무척 거창하게 설명했으나 내 물 공포증의 실체를 알기 위해 수영강습은 등록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물이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그저 두려워하는 감정에 집중할 때는 내가 구체적으로 왜 무서워하는지 알지 못했다.


9월 첫째 주,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영장에 들어서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 추워질 날만 남았으니 매번 돋아나는 소름도 어쩔 수가 없겠지, 나는 생각했다. 월수금 오전 초급반에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다 함께 수영강사 앞에 옹기종기 모여 물속에서 준비운동을 했다. 준비운동이 끝나자마자 나에게는 벌써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줄을 서서 차례로 수영을 해야 하다니.. 나는 걷더라도 앞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뒷사람과 부딪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조급했다.


수영강사에게 물을 무서워한다고 고백하듯 말하고 다행히 긴 줄에서 열외가 되었다. 초급반 사람들이 모두 줄지어 첨벙이는 동안 나는 레일 한편에서 잠수를 연습했다.


머리를 물속에 넣는 연습. 그것은 나에게 미지의 깜깜한 공간에 들어가는 행위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수영할 줄 아는 사람을 부러워했다기보다는 물속에 머리를 넣을 수 있는 사람들 모두를 부러워했다. 아가미가 없고 호흡이 필요한 인간이 물속에 머리를 넣는다니...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왜 머리를 물속에 넣는 것이 무서우냐? 의 정답은 물에 머리를 넣어보지 않고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레일 한편에서 음파 음파 호흡법을 연습하면서, 내가 물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내게 아가미가 없다는 사실' 이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 귀에 들리는 물소리는 또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그렇게 소리에 민감한 인간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공포는 멍청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귀에 물이 들어가서 고막을 타고 내 뇌 속에 수영장 물이 찰랑찰랑 차는 멍청한 생각을 하며, 나는 수시로 귀에서 물을 빼내기 위해 콩콩 제자리 뛰기를 했다. "회원님. 귀에 물들어가도 나중에 다 빠져요~"라는 강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나서 나는 귀를 막아버리기로 했다. 수영용 귀마개는 얇은 고무재질이었고, 가운데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서 소리는 약간 들어오고 물은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속에서는 본인이 계란 프라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담사는 그에게 식빵 두쪽을 가지고 다니라는 조언을 한다. 식빵 속에 들어가면 계란 노른자가 터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마치 그녀의 식빵처럼, 수영 귀마개는 내 뇌 속에 수영장 물이 찰랑찰랑 차는 것을 막아주었고 그날부터 내 수영 자신감 버튼이 되었다. 귀마개와 함께 자신 있게 머리를 물속에 넣을 수 있는 인간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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