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수놓고 뿌듯해하기
좋아하는 취미에도 성격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내가 처음 '프랑스 자수'라는 것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프랑스 귀부인 혹은 그 여식이 차분히 앉아서 원단에 꽃자수를 놓는 것이 떠올라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 '자수'라면 세심하고 꼼꼼한 작업인 자수보다 광명 찾고자 제 발로 서에 찾아가는 '자수'가 더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며..)
그런 프랑스 자수가 생각보다 재미있겠다고 느낀 것은 일본에서 출간된 프랑스 자수 도안 책을 알고부터였다. 책에는 프랑스 귀족의 꽃무늬가 아니라 귀여운 동물 자수 도안이 400가지나 들어있었다. 세심함보다는 삐뚤빼뚤 제멋대로의 바느질이 합쳐져서 꽤 귀여운 동물 모양이 완성되는 것을 보며 '이것은 내 스타일이군'했더랬다. 뭐든 자기네식대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일본은 정말 귀여운 것에 진심이다.
바로 한국에서 번역본을 살 수도 있었지만, 우연히 그즈음에 가족들과 북규슈 여행을 떠났다. 나는 보물찾기 하듯 온천도시 벳푸의 한적한 서점에 가서 그 프랑스 자수 도안 책을 찾아냈다. (여행기념품과 취미용품을 한큐에!) 그리고 자수실과 바늘 세트를 한국에서 구입하고 야심 차게 첫 작품을 만들었다.
책에는 동물이 완성되는 바느질 순서가 (아마도) 나와있을 것이다. 일본어 문맹자인 나는 일본어도, 도안도 제대로 읽을 줄 몰랐지만 그런 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국어로 쓰여있다 하더라도 자세히 읽고 순서를 맞춰가며 한 땀 한 땀 수를 놨을 리가 만무하므로.
사진에 나온 동물 모양을 보며 대강 흡사하게 삐뚤빼뚤 바느질을 해나갔다. 그리고 나름 귀여운 동물을 완성하고 뿌듯해했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서 세심하게 하지 않아도 무해하고 (그럼에도) 귀여운 무언가를 완성하는 취미라니.
그 반대의 예로는 이케아 가구 조립을 생각할 수 있다. 설명서에 나온 정해진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정말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해롭다. 한 번은 의자 윗부분을 반대로 들고서 끼워지지 않는다고 힘을 주고 누르다가 손에 피가 철철 흘러서 병원에 달려간 적도 있다.
그러나 자수를 내 멋대로 했다고 해서 십 분 만에 후다닥 완성해내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동물 하나를 완성하는데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단 말이다!! 그러니 순서나 규칙 없이 내 멋대로 온갖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결과물이 남는 취미라면 개인적으로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양말의 발목 부분에 자수를 놓았다. 두어 켤레는 선물로 지인에게 줬는데, 나머지는 들인 정성 때문에 한 번도 신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실용성이 떨어지는군?
이러한 종류의 취미들이 갖는 공통적인 장점은 아무생각없이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잡생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을때, 정해진 규칙따위 무시하고 내멋대로 진짜 내 것을 만드는 기쁨이 필요할때, 나는 꼼꼼하지 않아도 프랑스 자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