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시작하며
취향은 옮을까?
감기 옮는 정도가 개인의 면역력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취향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취향에 열린 사람인가, 잘 모르겠다. 몇몇 과거의 행적들을 생각해보면 나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취미를 열심히 옮겼던 사람이었다. 친구들 중에 가장 활동적이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걸 가장 즐기는 인간이니까.
그런데 내가 테니스를 취미로 시작한 것은 '옮았다'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4월의 비 오는 날,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건장한 청년과 호수공원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애초에 만남의 목적은 조깅이었으나, 기상청은 어째 무시하고 싶을 때마다 더 정확하더라.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져서 우산을 샀고, 그냥 빗길을 산책했다. 호수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걷는 동안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급기야 '뭔데.. 서울에도 스콜이 있어??' 라고 생각이 들 때쯤 공원 출구를 찾아 나와 카페에 들어갔다. 난파선에서 온몸으로 파도를 맞선 선원들처럼 온몸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였다. 당연히 화장은 무너져서 꼴이 흉했다. 화장실에 가서 양말에 물을 짜냈다. 축축한 신발을 불쾌하게 다시 신었다. 마르기 시작한다면 분명 온몸에서 쾌쾌한 냄새를 풍길 것이다. 그러나 그와 나는 그 꼴로 피자를 먹으러 가서 신나게 맥주를 마셨다. 그 불쾌한 날씨와 차림으로 어찌 그리 유쾌할 수 있었을까.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출근 전에 새벽 테니스를 친다는 그의 말을 듣고 그다음 날 바로 동네 테니스 레슨을 찾아봤다. 취향이 통하는 사람의 취미는 훔치고 싶게 마련이니까. 몇 년 전 만나던 남자 친구가 테니스 모임에 나갔다가 연락이 두절돼서 싸우고 헤어졌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나는 레슨 일정을 잡았다. 요즘 대세 테니스 나도 쳐본다!!
나에게 테니스를 전파해준 그와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저 마음으로 여전히 건강한 삶을 살고 있기를 응원하고 있다. 그의 유쾌함과 건강함을 기억하며.
테니스 레슨은 내 생각보다 많이 즐겁네요. 당신의 취미를 훔쳐서 잘 쓰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아참, 비둘기에 대한 소설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