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전의 서사
4개월 차 테린이, 요즘 나는 테니스복과 라켓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취미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만큼 새로운 취미에 돈을 쏟아붓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결국 어느 정도 돈을 쏟아붓지 않고서는 그 취미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마라톤을 참가할 때 받은 티셔츠를 대충 입고 레슨을 받으러 가던 첫 달보다 지금 더 반짝이는 눈빛으로 라켓을 잡고 있다면, 그 이유는 비단 레슨에 들인 시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언니와 나의 레슨 다음 타임에는 소녀 같은 50대 아주머니가 레슨을 받는다. 우리와 레슨을 시작한 시기는 비슷한데, 테니스 복장이 매번 다양하고 화려하다. 어느 날은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달라고 부탁하셔서 몇 장 찍어드렸는데, 무척 신나보이셨다. 그것을 보며 운동하는 자기 모습에 대한 뿌듯함(운동하는 나 정말 멋져!!)은 운동을 즐기는데 필수요소가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테니스복에 돈을 쓰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사실 첫 달에는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도 했다. 내가 과연 꾸준히 할까? 섣불리 처음부터 테니스 장비를 사모으다가는 후회할지도 몰랐다. 테니스는 내가 살면서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공놀이였다. 학창 시절 피구를 할 때면 날아오는 공은 언제나 피해야 할 날벼락같은 존재였고, 공을 와락 껴안아 받아내는 친구들은 나에게 기인 같은 존재였다. 피구공이건 테니스공이건 크기와 재질에 상관없이 공이 내쪽으로 날아온다면 그것은 언제나 위급상황이었다. 그런데 날아오는 공을 주저 없이 만나러 가야 하는 테니스에 관심을 갖고 레슨을 시작하다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다행히 레슨 선생님은 초보들에게 라켓을 빌려준다며 적당한 운동복 차림에 적당한 신발을 신고 오라고 했다.
3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우리 아파트 단지와 마주 보는 곳에 테니스장이 있었다. 여기에 이런데가 있었어?라고 생각할 만큼 가깝지만 무관심했던 곳이었다. 나는 언니를 꼬셔서 첫 달 레슨을 함께 등록했다. 언니도 여기에 이런데가 있었어? 라며 똑같은 말을 했다. 선생님은 인조잔디 위에서 형광 노란색 공들이 잔뜩 들어있는 카트를 끌며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마라톤 차림으로, 언니는 요가원에 가는 차림으로 테니스장에 입성했고, 라켓을 잡는 방법 같은 기본자세를 배우며 첫날을 보냈다.
레슨 첫 주, 언니와 나는 선생님을 물음표 살인마라고 불렀다. "지금 라켓면이 열렸어요? 닫혔어요?", "회전하려면 자세가 걸려있어야 돼요? 풀려있어야 돼요?", "지금 공이랑 가까웠어요? 멀었어요?" 우리는 그의 질문에 올바른 대답은커녕 도대체 라켓면이 열리는 게 뭔지, 자세가 걸려있는 게 뭔지, 공이 가까운 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질문의 의미 자체가 알쏭달쏭이었다. 답답해하는 물음표 살인마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송구한 마음이 들면서 다소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왜 이렇게 못 알아듣지? 답답한 것은 선생님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마라톤이 취미였고 언니는 요가와 골프를 배웠는데, 우리 몸 근육에 그것들이 남아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기한 일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의 자세를 비교하며 점쟁이처럼 우리의 지난 운동이력을 맞춰냈다. 언니는 유연하게 골반을 돌리지만 골프 치던 습관 때문에 완벽한 자세가 아니면 스윙을 하지 않았고, 나는 유연하지 않지만 날아오는 공에 빠르게 반응하며 스윙했다. 내가 성격이 급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초보자가 설명 같은 건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하며 나는 일단 냅다 공을 향해 라켓을 휘둘렀다. 머리를 굴리는 시간에 몸으로 한번 더 시도하겠다는 마음으로... 선생님은 내가 용케 공을 맞춘다고 신기해했다.
그러나 내가 진짜 신기한 것은 테니스를 배운 지 한 달째 선생님의 알쏭달쏭한 설명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 것이었다. "공을 세게 때리지 말고 굴리는 느낌으로!!!" 선생님이 몇 주째 강조하던 것을 라켓을 든 팔의 감각으로 느꼈을 때, 드디어 나는 물음표 살인마의 질문 너덧개에 겨우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느낌이라는 것을 한번 알았다고 수학공식처럼 매번 대입해서 정답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몸 근육에 기억되어 자동 재생되기까지 앞으로 몇천 번의 틀린 공을 굴려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좀 삐걱대더라도 몇 번의 랠리가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조금씩 테니스에 대한 자기 확신을 쌓아간다. 그리고 확신만큼 운동복도 쌓여간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오래오래 테니스를 쳐야겠다. 그만두기에는 옷을 너무 많이 샀다. 옷을 차려입고 라켓을 휘두르면 좀 더 신이 나서 또 오래오래 테니스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늘어나는 장비만큼 실력이 늘지는 모르겠지만, 늘어날 자기만족(멋진 장비로 운동하는 나 정말 멋져!!)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