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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척하면 척?? 척하면 꽝!!

쿨하지 못해서 사실은 안미안해

by 미쓰한

한 번은 어떤 남자와 대화를 하며 '연애관계에서 솔직한 것이 좋다'라고 말한 적 이 있다. 그는 자기도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내가 이탈리안 요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상대가 '저도 중국음식은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맞장구를 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내가 말한 솔직함이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나,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과는 좀 달랐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히 아는 것에서부터 오는 솔직함. 자기 자신을 알고, 그것에 일치하는 행동과 말을 하는 솔직함.


어릴 땐 솔직함 없이 연애하며 상대는 물론 스스로를 괴롭혔던 적이 많다. 아무래도 쿨 해 보이고 싶었던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버진로드를 걸어서 결혼에 골인하던 시기에, 나는 겉보기에 무탈한 연애를 진행 중이었다. 결혼식에 모인 친구들은 이제 누가누가 남았나 눈으로 숫자를 세어보며 매번 눈에 걸리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오빠랑 결혼 생각 있어?"


그때 내 대답은 항상 '아니오'였다. 그렇다고 비혼 주의자냐고 한다면 또 대답은 '아니오'였다. 아직 싱글의 텐션이 좋다고 너스레를 떨면 친구들은 모두 '맞아 너는 정말 하나도 안 외로워 보여, 정말 재밌게 인생을 사느라 결혼도 늦게 할 것 같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분명 결혼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결혼을 얘기하지 않는 남자 친구 옆에서 나는 나도 속이고 그도 속이며 섭섭하고 불만스러운 마음을 꾹 눌러 덮었다. 여자가 결혼을 푸시하다가 결국 헤어지는 숱한 커플들을 보며, 쿨하지 못하게 푸시하는건 나답지않다고 생각하며, 결혼한 친구들이 부럽다는 솔직한 감정도 쉽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것은 가끔 쌓여서 다른 쪽으로 분출되었는데, 남자 친구 입장에서는 이해 못할 봉변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 결혼을 추진하지 않은 것이 조상에게 감사할 정도로 다행인 일이었다.)


또 한 번은 곧 결혼을 하고 싶다던 남자와 진지하게 만남을 시작했던 적이 있다. 처음 만나기로 한날에 숙취가 심하다며 약속을 미뤘는데 (이것이 결말에 대한 복선..) 애주가로서 관대한 마음으로 이해를 해줬다. 서너 번의 만남만에 사귀기 시작했는데, 그는 나에게 이해심이 많다며 나를 높게 평가했다. 이성친구들과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귀가하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줬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성친구들과 자주 만나는 것도 별론데, 새벽 3시까지 술을 처먹어? 너는 진짜 글러먹었어)


조건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만큼 아쉬운 마음이 남아서 잘 안 맞는 부분을 발견하고도 헤어지는 것이 어렵다. (속물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그가 운전하는 벤츠 조수석에 앉아서 '너는 결혼을 꿈꾸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데?'라고 따져 물을 수 없었다. 또 한 번 나는 이해심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나도 모르게 언젠간 분출할 분노를 적립했다.


역시나 솔직하지 못한 감정은 탈이 나게 마련이다. 어느 날 그는 친한 남녀 친구들과 새벽 네시까지 술집에서 술을 마셨고, 노래방에 가서 필름이 끊겼고, 그 와중에 해장국집까지 가서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 그리고 아침에 피씨 카톡으로 내게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하며 미안하다는 소리를 해댔다. 그날부로 나는 부처 코스프레를 관두었다. 너 같은 인간이 도대체 왜 연애를 하는지 모르겠다, 상대에게 이렇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면서 결혼은 하고 싶냐, 너 같은 인간은 절대 결혼하면 안 된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격한 감정으로 분노를 분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결혼보다도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는 게 좋은 것 같아'라고 말하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방탕한 생활로 다시 걸어들어갔다. 그 역시 스스로를 몰라서 나를 속였던 것이다.


연애관계에서 '척'은 얼마나 독이 될 수 있는가.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독이다. 이제는 쿨한척하기 전에, 진짜 쿨한 줄 아는 상대방이 할 이후의 행동들까지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살펴본다. 한번 쿨한척하고 그 뒤로 내내 구질구질하고 싶지 않다면, 속이지 말기로 한다. 상대방도, 나 자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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