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세요, 엄마.
시속 30킬로 표지판 아래서 브레이크를 잡고 엉금엉금 기어갈 때면 운전자로서 세상 답답한 기분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반도로의 속도제한을 시속 50~30킬로로 제한하는 5030제도는 어린이와 노약자를 위한 안전법규이니 '운전자는 답답해도 참아야지 별수 있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어제 대형마트에 함께 다녀오는 길에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제한속도가 내려가니까 운전하기가 참 편안하더라~"
"답답한 게 아니고...?"
엄마는 30대에 면허를 땄다. 그때는 스틱 차량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운전면허를 따기 쉬운 시절도 아니었다. 장맛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악조건에서 연수를 받았고, 가을과 겨울 내내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실기를 치렀다.
시동이 꺼져서 몇 번을 떨어지고, 한 번은 T자에서, 또 한 번은 S자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합격한 날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알렸는데, 아빠가 뻥치지 말라고 대답했을 정도였다. 그때는 심지어 S자 후진도 시험을 봤다고 하니 7번 만에 붙은 엄마의 운전실력은 완성형에 가까운 것이었겠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도 엄마가 운전면허 시험을 보던 날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엄마 나 쉬 마려'라고 말하는 순간 번호판에는 엄마의 번호가 반짝였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꾹 참고 기다리라고 말하며 실기장으로 달려갔다. 운전면허시험을 생각하면 아직도 할 말이 많다며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며 웃는다.
"나는 양반이었어~ 내 앞번호였던 여자는 실기 주행 완벽하게 끝내고 마지막에 화단으로 뛰어들어가서 떨어졌다니까!"
나는 화단으로 돌진하는 노란 면허학원 자동차를 상상하며 푸핫 하고 웃었다.
엄마는 그 뒤로 십 년동안이나 스틱 차량을 운전했다. 장거리 주행도 문제없이 했고, 차를 타고 나갔다가 아빠가 술을 드시면 늘 핸들은 엄마 차지였다. 그런데 이제 엄마 나이 예순다섯을 넘기며 운전하기가 겁이 나는 모양이다.
일산에서부터 안양 사는 이모네까지 운전을 해서 다녀온 얘기를 엄마는 무용담처럼 들려주었다. 강변북로 위를 달릴 때 뒤에 차가 바짝 붙으면 얼마나 조바심이 나는지, 차선을 변경하려면 얼마나 멀리서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런 엄마에게 늦춰진 제한속도는 보행자로서가 아니라 운전자로서도 꽤 반가운 변화였다. 비단 모두가 천천히 가는 게 반가운 것뿐만이 아니다. 빨리 가고 싶어도 따라주지 않는 반사신경 때문에, '제한속도가 느린 걸 어째?'하고 핑계를 대고 싶은 것이다.
젊고 빨라서 답답한 운전자인 나는 엄마를 보며 세월이 주는 변화와 미래에 내가 느낄 세상을 미리 보기 한다. 그리고 이해해보려고 시도한다.
엄마의 면허시험장을 따라다니던 나는 이제 조수석에 엄마를 태우고 마트에 장을 보러 다닌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세대교체는 체감상 순식간에 이루어진 듯하다.
세월을 피해 가지 못하는 우리, 슬프지는 않지만 짠한 순간들.
울 엄마의 세월에도 제한속도를 둘 순 없나요?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질문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