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싱글 라이프 기간연장
하루 동안 잠수를 타다가 카톡을 열어 쌓여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에게서 부재중 통화도 세 통이 와있었다. 나는 대화창에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우리 그만 만나자. 정말 미안해. 잘 지내' 손끝으로 톡톡 메시지를 적었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아 버튼을 누르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전날 술을 좀 많이 마셨더니 속이 안 좋아서... 아니 아니, 사실 그건 핑계고 거절의 표현은 언제나 꺼내기가 좀 어려워서... 그래서 하루를 뭉개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상대에게 욕을 먹었다. 물론 쌍욕을 먹은 것은 아니다. 예의가 없다고 약간 화를 내다가, '아, 아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네. 너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지'라고 나도 까고 자기 눈도 까는 성찰적 태도를 보이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비난받고 맘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어쨌든 내 잘못이니까.. 나는 그 분노의 메시지를 꼼꼼히 읽어서 마음에 삼켰다. 변명을 하려 들지 않고 더 이상 용서를 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죄지은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화가 난 사람한테 용서까지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그에게 비겁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온전히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갑자기 변심을 한 것은 아니다. 첫 만남부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어쩌다 보니 일주일 만에 고백을 받아버렸다. 외모, 성격, 직업, 전체적으로 평균 점수가 높은 사람이어서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물론 싫은 점을 나열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게 진짜 문제였겠냐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빠질 때 체크리스트를 뽑아보거나 평균점수를 내지 않는다. 안될 이유가 한 트럭이어도 빠지게 될 사람에게는 정신없이 빠지게 되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때 머리가 마음을 설득하려고 했다. 나한테 잘해주니까 만나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지 않겠나? 원래 남자가 더 좋아해서 만나는 게 좋다고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열심히 설득했다.
대체 나는 왜 나를 설득했나. '왜'에는 늘 답이 있었다. 그저 내 나이가 무섭고 연애가 급했던 것이다. 급하면 체하고 체하면 아픈데도 말이다. '혹시나' 하고 나갔다가 '이번에도 꽝! 다음 기회에'가 반복되면 지치고 귀찮은 마음이 생겨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내 마음을 속여버리고 싶다. 사랑이야말로 진정성 없이 대충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을 해볼만치 해본 사람들은 내가 어리석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 거기서 거기고 그놈이 그놈이라며, 그냥 너 좋다는 사람 만나지 그랬냐며 나를 후회하게 할지로 모른다. 윽, 세상에서 후회하는 게 제일 싫은데...
하지만 급하게 생각하는 건 어찌 됐든 정말 잘못이다. 우리 언니는 늘 나에게 내 나이는 아직 어리다고 좀 더 즐겨도 된다고 했다.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나서는 '싱글라이프 기간 연장이네?' 라며 축하를 해주기도 했으니. 정말 축하할 일이지 싶다가도,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축하를 받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가도, 정말 나도 잘 모르겠다.
결론은 어쨌든 머리로 마음을 설득하는 건 (아직) 못할 것 같다. 어휴 연애고 뭐고 그냥 혼자 살아야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