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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Aug 30. 2021

장난칠 수 있는 사이의 장난

거 장난이 너무 심한거 아니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예의는 지켜야지"


헤어지던 날 그가 내게 했던 말이다. 나는 무례한 농담을 던지는 무개념 여자 친구였고, 그는 작은 장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예민 덩어리 남자 친구였다. 내가 던질 수 있는 농담의 정도에 대해 우리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헤어졌다. 사람은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그와 나 둘 다 스스로 '보통'이고 '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핫플레이스를 잘 안다는 사람이 신당동에 좋은 카페를 추천한 적이 있었다. 그는 힙한 카페라면 1박 2일에 걸쳐서 천안까지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이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날 바로 신당동 카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신당동이 힙하겠냐며 추천해준 사람을 촌노무새끼라고 조롱하는 게 아닌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건 무슨 인성인가 싶어서 "오늘 아침에 꽈배기 먹었어? 좀 꼬여있네"하고 장난을 쳤다. 그랬더니 "오늘 데이트는 내가 좀 꼬여있어서 못 할 것 같은데 다음에 볼래?"라고 급발진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같으면 옹졸한 새끼라고 욕을 하고 평생 만나지 말자고 했어야 정답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를 애정하고 평화를 사랑했기에 "장난이잖아ㅠㅠ 왜 그래ㅠ"하고 백기를 흔들었다.


또 언젠가는 카카오 신용대출을 이용하는데 그 과정이 엄청 편하다며 신나게 돈을 써재끼려 하길래, "왜 저래.. 그러다 금방 개털 돼"했더니 '왜 저래'라는 표현에 엄청 기분이 상해했다. 진짜 마음속으로 왜 저래.. 하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내가 무심하고 예의 없는 건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편 좀 들어달라고)


내가 변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친해지면 마음과 언행이 좀 풀어지고 편해지니까 말이다. 그를 처음 봤을 때 그는 무척 박식하고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여러 집단 내에서 꽤나 인정받고 심지어 같은 또래 몇몇에게 존경한다는 말도 종종 듣던 사람이었다. 나 역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고, 좀처럼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지않는 그가 내게 만나자고 했을 때 우쭐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연인관계는 존경만으로 이루어진 한없이 성스러운 관계일 수는 없었다. 연인은 또한 유희적 관계가 아닌가? 우리는 웃고 떠들고 장난을 쳤으나, 내가 그의 장난을 받아들이는 것에 반해 나의 장난은 그에게 자주 상처가 되었다.


그와 헤어지고 감정이 멀어지고 나서야 그것이 그의 자존감과 관련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었는데, 어쩌다 한번 사진을 찍고 잘 나오지 않으면 한동안 상당히 불쾌해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화면의 모습이 다른 것이 상당히 두렵고 괴로웠던 것 같았다. 나도 천 장 정도는 찍어야 한 장 정도 마음에 든다고 설득을 해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아마 자존감의 문제였을 것이다. 멀리서는 아는 것 많고 모든 것에 열려있으며 아주 통찰력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친밀한 사이가 되어 바라보았던 그의 모습은 좀 달랐다. 그가 사람들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고 거리를 유지했던 이유를 나는 그때에서야 이해했다. 스스로 정해놓은 위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것이 몹시 두려웠을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인간이었으니까.



"친해지고 싶어서 했던 장난이었어요"


때로는 친분과 장난의 선후관계를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공격성 장난이라면 있던 친분도 사라지게되는 것을 모르고.


틴더에서 매칭 되어 대화를 주고받던 남자였는데, 으레 소개팅 어플의 대화 수순이 그렇듯 내게 현재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나는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강사라고 소개했고, 그가 연이어 내 전공을 물었다. 내가 사학과를 나왔다고 하자, "아~ 문사철이 시구나~ (문학, 사학, 철학과를 싸잡아 부르는 단어: 주로 취업이 어려운 학과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역시 나는 엄마 말 듣기를 잘했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뭐? 나는 불쾌해하기전에 그의 말뜻을 찬찬히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네? 그게 무슨 (개)소리죠?" 했더니, 그도 약간 아차 싶었는지 "제가 심리학과에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거기 나와서 뭐 할거냐고 반대했던 적이 있어서요"라며 갑자기 심리학과까지 까는 게 아닌가? (문사철만 까는 게 미안해서 더 멍청한 발언을 하는 어리석은 인간)


내 직업과 전공을 모두 무시하는 그는 과연 어떤 대단한 학벌을 가지고 있는지, 불쾌함을 참지 않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과를 나왔다는 말만 하고는 죽어도 학교를 밝히지 않았다. (내 학벌을 이미 알고 나서였다.) 그리고 나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친해지려고 장난을 치다 보니 지나친 농담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내 인생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사람이 사과나 반성을 하는 것은 나에게 무의미했다. 그 때문에 나는 '좀 멍청하면 그럴 수 있죠'라고 말하고는 대화를 종료해버렸다. 내 기준에서 그가 했던 장난은 친한 친구일수록 더 이해할 수 없고, 머리채를 잡아 마땅한 장난이었다.



어쩌면 주고받는 장난을 통해 그 사람의 면면을 알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어떤 것에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편견과 인성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장난을 쳐보면 꽤나 많은 것을 얻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섭다. 나는 언제 어떤 소소한 장난에 자격지심이 발동해서 욱했던 걸까? 나는 언제 어떤 편견에  무례한 장난을 쳐서 상대를 불쾌하게 했던 걸까? 내가 '보통'이고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예민 덩어리 전남친도,  무례한 틴더남도 똑같이 본인들이 '보통'이고 '정상'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나도 아주 완벽한 무죄는 아닐지도 모른다. 조심하자.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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