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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Jul 20. 2021

당신의 동영상속에는 있나요?

가장 그리운 그것

그는 흔한 호구조사 대신 우리 집 강이지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고양이 사진들로 자기소개를 대신했다. 통통한 뒤태를 가진 까만 고양이 사진 한 장과 노란색 줄무늬를 가진 아기 고양이 사진 한 장이었다. 이제 갓 눈을 뜬것 같은 아기 고양이는 지인이 임시보호를 맡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그가 까만 고양이를 모시고 있는 집에 그 아기 고양이를 데려올 것이다. 다 큰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가 함께 지내는 것이 걱정되지 않을 때쯤에. 그전에 그는 아기 고양이에게 몇 번이나 찾아갔다. 친근함을 쌓기 위해서 라고 했다.


동영상속의 고양이는 꼬물꼬물 움직이며 삐약삐약 울어댔다. 나는 그를 만나기도 전에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을 수십 번이나 받았는데, 내가 리액션에 다소 지쳐서 답장이 짧아져도 고양이 동영상은 어김없이 전송되어왔다. 아기 고양이를 데려오고 나서는 그가 집을 비우기 어렵다며 첫 만남은 며칠이나 더 미뤄졌다. 그러는 동안 더 많은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은 업로드되어 카톡 채팅방에 쌓여갔다. 대화 속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그 당시, 기대와 관심을 쏟아도 한 번에 허물어지는 만남들에 지쳐서 나는 그에 대해 궁금한 것도 거의 없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이 많은 고양이 콘텐츠로 유투버를 할 생각은 정말 없으신 건지.. 정도였다.


그와 나는 일요일에 만났다. 드라이브 좋아해요? 같이 드라이브 가실래요? 그가 물었을 때, 까만 고양이가 드디어 아기 고양이를 식구로 받아들인 건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여름이 멀치감치 떨어진 선선한 봄날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하얀 차가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열린 문으로 어색하게 몸을 구겨 넣었다. 그는 마시랑 해변에 있는 한 카페 이름을 꾹꾹 눌러 네비에 입력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화도로를 타고 영종도를 향해 갈 것이다.


김포대교를 건널  그의 선한 옆모습은  건너편의 일산을 바라봤다. 얼굴에 걸맞은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는 어린 시절 일산에 살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지금도 일산 사시는 거예요? 내가 묻자, 그랬었죠, 그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원래  계셨고, 어머니는 3 전에 돌아가셨어요. .. 하는 외마디의  짧은 침묵. 그리고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어쩔  몰라하는 나에게 되려 괜찮다고 위로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에게 이런 순간은 3   번이나 있었을까. 잘못한  하나 없이도 상대를 불편하게 했나 싶어 빨리 대화 주제를 돌려야 하는 상황. 가늠할  없는 감정들이지만 언젠간 나도 고아가 되겠지. 나는 급하고 어색하게 그의 주제를 따라갔다.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슬픈 이력을 들으면 나는 언제나 고장이 난다.


그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종종 영종도에 온다고 했다. 스피드를 즐기는 것과 한적한 바닷가 카페에 혼자 앉아있는 것으로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가 액셀을 밟자 마력과 토크가 높은 독일차는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올렸다. 질주하는 차 안에서 나는 고통과 안전, 죽음 따위에 대해 생각했고, 말없이 낯선 남자와 함께 침묵 속에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약간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엔진의 굉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질주는 조금 무서웠고 의외로 꽤 짜릿했다. 그 스릴감에 속아서 나는 한동안 떨렸는지도 모르겠다. 마시랑 해변에는 갯벌체험을 하러 온 가족들이 밀물에 쫓겨 다시 뭍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와 나는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앉았고, 새삼스레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가 긴 암투병생활을 끝내고 돌아가신 해에 그는 연인과도 이별을 했다고 했다. 더 빨리 떠나갔어야 맞는데, 참아준 것은 연민이었으리라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가 얼마나 슬펐을지 짐작하는 것조차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더 이상의 연민은 그에게 지긋지긋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영상을 많이 찍어두세요. 사진은 흔해서 얼굴은 기억이 잘나는데 목소리는 잘 기억이 안나거든요.  


차분하고 담담한 말투였다. 내 세상에 없는 사람을 기억할 때, 무엇이 가장 그리울지 나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제일 뚜렷하게 기억나고 어떤 부분이 가장 희미할지, 그래서 가장 그리울지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마 누군가를 오랫동안, 무척 그리워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완벽하게 해가 지고 나서야 서울에 돌아왔다. 그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1시간이나 더 걸려서 집에 도착했지만 어색한 시간은 아니었다. 다음엔 커피 말고 밥도 먹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고양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하더라도 또 귀엽고 깜찍한 고양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쁠 테지, 그리움이 무언지 잘 아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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