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해서
"그랭! 그로자~"
여행 계획을 짤 때, 나의 여행 메이트인 친언니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다. 이 마법의 문장 덕분에 우리의 여행은 거의 늘 평화로운 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지부터 항공권, 숙소, 여행 일정, 맛집까지 열과 성을 다해 며칠에 걸쳐 계획하는 것을 꽤나 즐기는 편이고, 언니는 군말 없이 따라와서 무얼 먹고 보고 경험하든 '우왕 여기 좋당~ 우왕 여기도 디게 좋당~'하고 즐거워하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주장했던 여행지는 스위스의 인터라켄이었다. 언니는 캐녀닝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미 대학시절 혼자 인터라켄을 다녀왔던 나에게 스위스는 썩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나에게 스위스 인터라켄의 첫인상은 그보다 몇 년 일찍 다녀온 뉴질랜드의 퀸스타운과 무척 흡사했다. 아주 흡사한 풍경에 빅맥 가격은 두배 이상이라니.. 뭘 해도 다 비싸고.. 그 당시 돈이 없어서 밥 주는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전략적으로 묵었지만, 주머니에 짤짤이만 들고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식당 테라스에서 비싼 퐁듀를 먹는 다른 관광객들을 발견하고 침도 흘리고 눈물도 조금 흘렸던 것 같다. 그 후로는 누군가 스위스가 좋다고 찬양을 할 때면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를 아냐며, 테카포 호수가 빛나는 뉴질랜드가 저렴이판 (그러나 분위기는 똑같은) 스위스라며, 뉴질랜드 관광청 버금가는 홍보를 해댔다.
그래서 나는 자매 여행 총괄 책임자로서 엥?? 스위스?????? 라며 언니의 제안에 반감을 가지며 되물었다. 하지만 이내 '그랭그로자'만 반복하던 언니에게 너무 가혹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심지어 언니가 목돈이 생겼다며 숙박비도 혼자 내겠다고 했는데.. (다시 따지고 보니 스위스???? 하고 반감을 약간 가지다니 나 나쁜 년이네?)
그런데 이 욕심 없는 여자는 '난 진짜 스위스 캐녀닝 말고는 다 너 마음대로 해도 돼'라며 나머지 여행지를 나에게 넘겼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있던 이탈리아의 소도시를 여행지에 추가하며 정말로 스위스에서 캐녀닝만 끝내고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일주일의 일정을 짜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행을 다닐수록, 나는 소도시가 좋아졌다. 점점 볼 거 없는 작은 동네가 좋아지는 이유는 아마 떨어진 체력, 적어진 욕심, 늘어난 여유 때문이 아닐까? 대학생 시절 30일 안에 9개 도시를 꽉꽉 채워놓고 어느 도시에는 고작 반나절만 머물렀던 여행을 생각하면 그땐 참 마음이 바빴다. 5일 동안의 런던 여행 중에는 너무 볼게 많아서 대영박물관도 가지 못하고 런던의 클럽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마지막 날 파리로 급히 넘어가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더 타이트하지 못했던 내 일정을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아마 앞으로 그런 빡빡한 일정의 여행은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달간의 첫 배낭여행을 정신없이 타이트하게 떠나겠다는 어린 친구가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또 그 여행을 응원할 것이다. 원래 자신의 취향을 찾기까지는 정신없이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테니까 말이다. 사람은 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해서, 다시는 하지 않을 것들에 대한 경험 역시 얼마나 소중한가!
언니는 스위스에서 캐녀닝만 하면 족한다고 했지만, 이왕 온 김에 (여행 욕심을 아직도 다 버리지 못하고) 알프스의 봉우리, 융프라우요흐에 다녀와서 캐녀닝에 참여하기로 했다. 스위스의 산악기차는 동화 같은 경치를 보러 온 이용객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창문이 천장까지 모두 유리로 되어있었다. 설산과 푸른 언덕, 목에 종을 달고 있는 소들과 빨간 지붕의 오두막을 보니 하이디가 뛰어나와 요들송을 부르지 않아도 나는 스위스에 와있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풍경이 있는 값비싼 나라 스위스. (사람들은 모든 것에 값을 매기니까)
아쉽게도 언니에게 청명한 융프라우요흐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날씨가 약간 흐렸고 구름이 코앞에서 시야를 가렸다. 물론 언니는 그런 것은 하나도 상관없이 또 '우왕 여기도 디게 좋당~'하고 즐거워했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신라면도 먹고 특이한 인증샷도 열심히 찍었다.
산악기차를 타고 다시 내려오니 점심시간이었다. 내 비루했던 첫 배낭여행기를 들은 언니는 이번에야말로 스위스 퐁듀를 먹어볼 절호의 기회라며, 그때 침 흘리며 바라본 식당이 어디냐며 물었다. 드디어 나도 식당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퐁듀를 즐기는 것인가. 우리는 일단 여행은 역시 낮술이라며 맥주부터 시켰다. 그런데 여유는커녕 막판에 한잔을 더 시켰다가 시간이 촉박해서 맥주를 빠르게 위장에 쏟아부어야 했다. 어릴 땐 돈이 없고, 돈 벌고 나서는 시간이 없어서 여행하기 힘들다는 말을 체험하듯, 우리는 캐녀닝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느라 시계를 수십 번 확인했다. 그래도 내 인생 첫 스위스 퐁듀는 꽤 내 스타일이었다.
캐녀닝은 말 그래도 계곡 사이의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스포츠였다. 우리 한국 자매는 환상의 콤비였는데, 언니는 높은 곳에서 혼비백산하는 고소공포증이 있었고 나는 허리까지 오는 깊이의 물에서도 패닉이 오는 물 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한 인원은 직원을 제외하고 모두 12명이었다. 캐나다에서 온 중국계 자매는 질서 정연하게 매달리고 기어가고 뛰어내렸고, 수영을 못한다는 스페인 여자도 영법을 알지 못할 뿐 물속으로 풍덩풍덩 잘 뛰어내렸다. 나머지는 다 남자였고 그들 나라에서도 군사훈련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으나, 다들 해병대처럼 잘 뛰어내렸다.
언니는 절벽을 기어내려갈 때 거의 울다시피 해서 직원이 답답해했고, 나는 캐녀닝의 마지막 가장 높은 절벽 다이빙을 포기하고 줄을 잡고 내려왔다. 내가 포기했던 다이빙을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성공했다. 내가 이렇게 스위스에서 엄마를 애절하게 찾을 줄 알았으면 차라리 엄마를 모셔오는 건데..라고 하나마나한 생각을 할 때, 초급 캐녀닝 4시간이 겨우 끝이 났다. 캐녀닝 사무실에 돌아와서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녹화된 비디오와 사진, 그리고 임무 완료를 축하하는 맥주 한 병을 받았다.
"사진 보니 그래도 꽤 뿌듯하네, 다음에 또 하자면 또 할 거야?" "아니 아니 안 해 안 해" "나도 나도" 나는 언니를 따라 도리질을 쳤다. 초급을 신청했으니 망정이지 중급이었으면 기절할뻔했다며 우리는 한동안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잡고 함께한 경험을 여러 번 곱씹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해서, 다시는 하지 않을 것들에 대한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안다. 내가 심청이처럼 뛰어내릴 때 물속에서 나는 잡아주고 끌어주던 외국 친구들, 스위스 계곡에 몸을 던지는 느낌, 가차 없이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계곡물의 맛. 또 언제 느낄 수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언니의 여행지 선정은 탁월했다.
그니까 언니 이번엔 어디 가고 싶어?
그랭? 그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