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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Dec 15. 2021

사주 보러 가서 역술인과 싸울뻔했던 이유

내가 왕이 될 사주인가

구로에 있는 역술인에게 연락을 해서 예약을 잡은 것은 나의 절친 S였다. S에게는 용한 점쟁이나 역술인들에 대해 잘 아는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그 무렵 S는 이직한 회사에서 갈피를 못 잡고 앞날에 대해 고민하던 상태였다. 나의 핑계는 '호기심'과 '재미'였지만, 마음속에 더 큰 이유로 작용했던 것은 아마 느닷없는 이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내 연애의 행방은 더럽게 재수 없게도 내 자유의지와 아주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내 뜻과는 아예 상관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내 생년월일에 새겨진 올해의 재수는 어떨지, 몹시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미래의 길잡이가 된다면 하루 반나절이 걸려도 찾아가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직장 동료의 말에 의하면) 생각보다 서울 곳곳에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나같이 다 용하다고 하니 그 말을 한번 믿기로 하면 그중에 어디를 골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역술인을 찾아가는 길에는 입춘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우산을 털고 들어간 오피스텔의 고층에 역술인의 사무실이 있었다. 역술인은 40대로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머리를 범상치 않게 바짝 밀어서 도사 같은 인상을 풍겼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우리는 내 운세를 먼저 점쳐보기로 했다. 테이블 옆으로는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티브이가 걸려있었다. 4차 산업은 요즘 사주풀이 마저 바꿔놓은 건가, 내가 기대했던 낡은 주역 책과 휘갈겨 쓴 한자 같은 건 없었다. 역술인은 키보드에 내 생년월일을 톡톡 입력했고 순식간에 한자들로 채워진 화면이 티브이에 보였다.


역술인은 먼저 기본적인 사주팔자에 대해 설명했다.   사주는 시간에 따라 유동적이어서 크게 10년마다 대운이 든다고 하는데, 내 사주는 3살을 기준으로 10년마다 대운이 든다고 나왔다. 대운이 든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의미와는 달리 길할 수도 있고 흉 할 수도 있는 큰 사건이 들어선다는 말이다. 3살이나 13살은 주로 부모운에 좌우되는 유년시절이기 때문에 개인사랄 것이 없지만, 20대부터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커다란 개인사가 생긴다고 했다.


'뭐야 뭐야... 역시 고대의 역학이라는 것은 위대한 학문이었던가?!' 나는 속으로 빠르게 n3살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분명 23살에는 대학과 전공을 옮겨서 이십 대에 가장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그렇다면 33살은? 그때야말로 대격변의 시기였다. 그해 초에는 6년 사귄 남자 친구와 삼 개월의 이별 과정 끝에 헤어졌다. 그때부터 목금토일 남자를 만나면서 애인 구인 활동을 하느라 심신이 지쳤고, '결국! 드디어! 구원!'이라고 느꼈던 연인에게 뻥 차이며 한해를 마감했다.


속으로는 '그래, 맞네, 역시 사주풀이는 정확하다'라고 호들갑 떨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지만, 중요한 건 과거보다는 미래였다. 나는 역술인이 잠시라도 내 심연의 불안감을 잠재워주길 기대하며 미래에 대해 물었다. 과연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까?


그것에 대한 역술인의 풀이는 왠지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사주풀이가 나빴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사주는 자동차, 팔자는 도로라고 비유한다면, 내가 세단을 타고 태어나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아주 훌륭한 사주팔자를 가졌다고 했다. 그냥 다 좋은 사주라고. 좋다고 하면 좋긴 한데, 뭐든 다 좋다고 하니까 믿을 수가 있어야지.. 구체적으로 풀이를 해주면 좋겠는데, 뭘 물어도 그냥 다 좋다고만 하니 나로서는 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역술인은 내 표정을 살피며 그때부터 뜬금없이 과거 얘기를 물고 늘어졌다. 지난 사랑이 너무 불같았을 거라고. 20대 사랑만큼 30대 사랑이 뜨겁지는 않을 거라고(당연한 말 아닌가?) '아니... 과거는 나도 잘 아니까 그만하고, 미래나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하는 마음이 들어서 역술인의 말을 끊고 미래의 건강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건강은 병원에 가서 물어보란다....?


그때 나는 그 역술인과 드잡이 하는 상상을 했다. 건강은 병원 가서 물어보라는 역술인에게 내가 오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야 할까? 그 역술인과 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분위기가 살벌했는지 S는 그때 본인 사주풀이는 포기하고 사무실을 나와야 하나 몇 초간 고민했다고 했다. 물론 나도 체면이 있고, 점을 보러 와서 정확한 무언가를 바라는 것 자체도 모순인가 싶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순순히 오만 원을 내고 나왔다.


사실 사주풀이는 역학이라는 책을 통해 미래를 점치는 학문이라고 하지만, 그 풀이를 하는 사람에 따라 180도 다르게 설명될 수도 있는 학문이다. 최근 모임에서 사주와 관상, 손금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진 분을 뵌 적이 있다. 그분이 해주신 이야기를 들으면 사주풀이는 '사주'보다 '풀이'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을 건국하기 전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미래를 점치고자 사주를 봤다. 무학대사는 이성계에게 그의 사주가 백만 대군을 이끌 사주라고 풀이했다. 이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이성계는 자신과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몹시 경계해야 할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그 때문에 전국에 방을 붙여 본인과 같은 생년월일 한시에 태어난 자를 수소문해서 찾았다. 그 결과 전국에 이성계와 같은 사주를 가진 자가 한 명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당장에 그를 잡아오라고 명했다. 이성계와 똑같이 백만 대군을 이끌 사주를 가진 그를 붙잡아와 보니, 놀랍게도 그는 양봉업자였다. 그에게 백만 대군은 꿀을 따는 벌떼였던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사주는 풀이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미래로 해석될 수 있다. 애초에 맹목적인 믿음으로 사주풀이를 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왕 몇만 원 써가며 사주풀이를 하자면 아무한테나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니 그래서 누가 용한지는 어떻게 아느냐고? 그건 정말이지 나도 알고 싶다. 그런데 미래가 어차피 풀이하는 사람 마음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그저 덮어놓고 좋다고 믿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2022  모두 행운의 한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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