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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Dec 04. 2022

연애초 금기사항 3가지, 제가 해보았습니다.

신중함이 부족했나?

1년에 3번 정도 이별해본 사람들은 안다. 고백과 승낙만으로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서른을 넘어보니 연애의 시작도 어렵지만, 연애의 지속은 더럽게 어려운 것이었다. 나의 연애에는 '마의 3개월'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3개월은커녕 30일 천하로 끝난 연애도 있었지만 말이다.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관계는 당연히 금방 헤어졌고, 어떤 관계는 별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별안간 뉴스속보처럼 이별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내 연애 얘기를 할 때면 '아니 아니 그 사람은 전 남자 친구고, 아니야 그 자식은 그 전이고..'라고 정정해주며 진득하지 못한 내 연애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사랑할 사이인가? 그것은 시간만이 증명해주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온전히 통과해서 안정권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것뿐.


연애 초반에 하지 말아야 하는 세 가지
1. 고가의 선물을 하는 것
2. SNS에 커플사진을 올리는 것
3. 지인이나 가족을 소개해주는 것


인터넷에서 '연애 초반에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라는 카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신중하고 싶다면 피해야 할 세 가지를 차례차례 넘겨보며 생각했다. 제길, 나는 3관왕이잖아? 첫 번째는 '고가의 선물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오빠... 아직도 내가 사준 에어프라이어 잘 쓰고 있겠지? 사귄 지 두 달 만에 그는 이사를 했고,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파티 준비로 스테이크를 굽고 파스타를 볶고 치즈를 주문하겠다며 부산 떠는 그가 대견해서 집들이 겸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두 달이라는 관계에 알맞게 저렴한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우리 다음 파티 때는 통바비큐 구이를 해 먹으면 너무 좋을 것 같잖아?! 그 때문에 360도 회전하는 로티세리 기능은 놓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파티 조명에도 신경 쓰는 그인데, 디자인도 미관을 해치면 안 되니까 고급스러워야 했단 말이다. 쓰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내가 또 사줘야 할 텐데, 그럼 AS도 신경 써서 좋은 브랜드로 사줘야 되지 않겠나.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날들을 생각하며 나는 그 당시 꽤 고가의 에어프라이어를 주문해서 그에게 안겨줬다. 정작 내가 사준 에어프라이어에서 나온 요리는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고, 우리는 정초부터 이별을 했다. 그 후에도 잊을만하면 매달 카드고지서에 찍힌 에어프라이어 금액이 그를 떠올리게 했다. 무이자 할부가 연애보다 길었다.


 두 번째 'SNS에 커플사진 올리기'을 저지른 건, 오래간만에 3개월을 넘겨서 좀 신나 있던 시기였다. 100일을 앞둔 주말에 그를 위해 작은 앨범을 준비했었다. 우리의 다정한 모습을 사진으로 인화해보니, 이 행복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숱한 헤어짐으로 연애 고자가 아닐까 주변의 의심을 샀음이 틀림없었다. 이러다 또 헤어지면 의심만 짙어질 테니 나무꾼이 선녀 옷 감추듯 조심조심했었는데, 이제 '마의 3개월'을 용케 지나쳤잖아? 나는 과감히 내 인스타그램 사진첩에 그를 추가시켰다. 이제 진득하게 한 사람을 만나는 모습을,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만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그렇게 100일에서 10일을 더 사귀었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이별통보는 일방적이어서 더 슬펐다. 올렸던 사진을 지우려면 그 사진을 다시 봐야만 했다. 지우려고 우리의 다정한 모습을 다시 본 날, 나는 결국 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연결음이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그는 결국 받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사진첩에서 그를 덜어냈고, 지인들이 내가 또 연애를 망쳤다는 걸 알게 될까 봐 부끄러웠다.


세 번째 금기사항에 관해서라면 좀 복잡한 일이었다. 내가 틴더로 전도유망하고 곧 결혼할 생각이 있는 건실한 청년을 만났던 때였다. 그땐 매일 단톡방에서 함께 연애 얘기를 떠들어대던 미혼 친구 두 명이 있었는데, 우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내 연애도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연애를 장려하겠다고 오지랖을 부렸다. 사귄 지 3주밖에 안된 남자 친구에게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자고 제안했고 3대 3 술자리를 주선했다. 그의 친구 두 명은 모두 캐나다 유학시절 만난 사이였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건실한 청년들이었다. 여섯 명이 모였던 날, 내 친구 H와 내 남자 친구의 친구 J는 술에 취해 키스를 했다. 그다음 날부터 H는 매일 단톡방에서 J와의 진행상황을 중계했다. 그녀는 J가 지금껏 만나왔던 남자들과는 다르다며 한껏 기분이 들떠있었다. 연애를 장려하는 입장에서 나는 당연히 그들을 응원했다. 내가 헤어지기 전까지는.


지겹고 슬프게도 나는 그 남자 친구와 한 달 만에 헤어졌다.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 성격이 문제였을 것이다. 곧 결혼할 생각이 있는 건실한 청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친한 여사친과 새벽 네시까지 술을 퍼마시고 핸드폰을 감자탕집에 두고 온 날, 나는 그에게 소리를 질러댔고 그는 나에게 이별을 말했다. 아주 예상치 못한 수순은 아니었다. 그는 연락 문제로 나를 꾸준히 괴롭히고 있었다. 결국 주말마다 알코올을 즐기고 연락이 두절되는 상황이 반복되다가 이별하게 된 것이다. H는 그 과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H는 여전히 한껏 들뜬 기분으로 J에 대해 계속 떠들어댔다. 특히나 J는 얼마나 연락이 잘 되는 사람인지, 얼마나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지 나에게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카톡으로 대답이 없으면 전화를 했다. "J는 술 마셔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현관에서 인증샷 보내더라. 너무 귀엽지 않아?" 신이 난 H에게 '너한테나 귀엽지.. 너 제정신이니? 나 지금 연락 잘 안돼서 이별한 사람이야...'라고 말하지 못했다. 연애 초반에 느끼는 설렘을 나도 모르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때 참지 말았어야 했나?


마지막에 내가 진짜 폭발한 이유는 그런 자랑 섞인 문장들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이별한 지 일주일째, 예상대로 H는 고백을 받았다. 역시 늦은 밤 실시간으로 H는 카톡을 보내왔다. "우리 결국 사겨요~" 기쁨이 묻어나는 문장과 하트를 뿅뿅거리는 이모티콘에 나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눈치 좀 챙기라고 나 아직 이별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하는 말. "ㅠㅠ정말 우리 미쓰한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ㅠㅠ" 그 말이 나를 왜 그렇게 열받게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에게 공감능력도 지능이라는데 지능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화를 냈고, 다시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인생에서 공감 지능 낮은 친구를 하나 덜어냈다.


'연애 초반 후회할 짓' 3관왕이 어떤 기분이냐면, 사실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 신중하지 못했다는 오명은 있겠지만,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고 연애에 푹 잠겨봤던 기억은 꽤 괜찮은 기억이었다. 이별의 횟수가 늘면 설렘은 독이라거나, 상처받는 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방어적인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동전의 양면처럼 신중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금기사항이라고 남들이 정해두어도 내가 해야겠다면 하는 편이 좋다. 언젠간 자연히 누가 시켜도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테니까.


*해당 글은 네이버 포스트 연애결혼에서 ‘연애의 기쁨과 슬픔’으로 연재중인 글 입니다.

https://naver.me/IgNNNT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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