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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Jan 06. 2023

‘0고백 1차임’의 기록들

이른 거절에 대하여

스물두 살 때 토익학원에서 '0고백 1차임'을 당해본적이 있다. 단어를 100개씩 외우고 틀리면 개당 천 원을 내는 혹독한 스터디 모임에서도 제 시기를 맞은 남녀들은 서로 눈이 맞아 연애를 했다. 토익스터디에서 커플이 곧잘 탄생한다는 소문에 기대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밤톨머리에 순진하게 생긴 스물네 살짜리 오빠가 귀여워서 조금 관심이 생겼던 것뿐이었다. 확실히 잘생긴 건 아닌데, 귀엽게 못생겼달까? 승무원을 준비하고 있던 같은 스터디의 동갑친구에게 말하자, 그 친구가 피식 웃어버린다. 그래, 그 밤톨오빠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는 것도 꽤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경쟁자가 없다는 건 다행인 일이었으니까. 내가 자기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 밤톨오빠는 쑥스러운 척하면서 꽤나 기뻐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웬걸? 그 오빠 눈치가 빨랐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 귀띔을 해줬던 걸까? 내가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전부터 이미 밤톨오빠는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일찍 도착한 스터디룸에는 밤톨오빠가 혼자 앉아있었다. 그리고 내 가방에는 오는 길에 잔돈이 필요해서 우연히 샀던 초코바가 하나 들어있었다. "오빠, 제가 선물 줄게요" 나는 앞에 서서 가방을 뒤적였다. 계획된 준비였거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심정이었다면 덜 억울했을 텐데. 그것은 그저 무심코 건네려고 했던 초코바였단 말이다. "선물?" 내가 가방 속에서 초코바를 찾아 팔을 휘적이는 사이,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받지 않겠다는 말. "미안해, 나는 받을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고백하지 않고도 완벽하게 차일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그 순간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지 초코바를 주려고 한 건데 왜 그렇게 오버를 하냐며 그에게 무안을 줬지만,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뭐야??? 누가 사귀자고 했어??? 그냥 좀 관심이 있었던 것뿐인데, 내가 상사병이라도 낫다고 생각했나 보지??? 나는 모멸감을 느꼈고 오랫동안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승무원 지망생 친구가 밤톨오빠와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는 스터디모임과 토익학원을 모두 때려치웠다. 그들에게 영원히 나는 고백에 실패한, 완벽하게 차이고 도망친 사람이 되었다.  


그날의 굴욕감은 나에게 '상대를 위한다면, 거절멘트를 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아쉽지만 귀하와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맘 좋을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밤톨오빠에게 느꼈던 것처럼 애매한 정도의 관심이라면, 나처럼 이른 거절 멘트가 괘씸하기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단순해지고 시간낭비가 금기사항이 되어버린 30대 연애시대에 돌입하자 '이른 거절 멘트'는 오히려 좋은 것이 되기도 했다. 서른 넘어 소개팅 혹은 어플로 만난 남자들은 모두 관심과 호감 없이는 만날 수 없는 잠정적 연애 관계들뿐이었다. 그럴 때는 거절의 지체가 자칫하면 어장관리의 수단으로 여겨져서 예의 없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소개팅 어플에서 홍콩대학 출신이라는 그를 만났던 것은 내 나이 서른셋 가을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동남아에 살고 계셨고, 본인은 한국여자와 결혼해서 앞으로 쭉 한국에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오랜 해외 생활과 바쁜 업무가 맞물려서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연애를 쉬었다고, 스스로 결혼이 늦어진 이유가 아주 타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고스펙을 가진, 그런데도 별다른 하자 없이 싱글인(흔치 않은!!)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처음 만나서는 커피를 마셨고, 두 번째 만나서는 을지로의 작은 와인바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세 번째 만남도 있었다. 열심히 연락해서 다음 만남을 가지려는 그에게서 나에 대한 호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찾아내고, 만나고, 구애하고, 결국 잘 안 돼서 다시 혼자 제자리에 돌아오는 연애 실패의 사이클을 돌다 보면, 까탈 부리지 말고 '나 좋다는 사람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그는 스펙도 훌륭하지 않은가? 그래서 호감이 생기지도 않고 말도 안 통하는 그 남자를 이 악물고 참아봐야겠다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한 번만 더 만나보자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속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돈만 보고 사람 좋아하는 거 그거 욕할 거 아니다, 대단한 거다, 생각하기도 했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어느 남자가수의 노랫말처럼 호감은 노력으로 되지 않았다. 나는 그와의 애매한 관계를 그대로 놔두고 헛헛한 마음에 어플을 다시 켰다. 불균형한 성비 덕분에 또 새로운 남자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만나봐야 알겠지만 이번엔 제법 말이 통하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제 홍콩 남에게는 썸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냥 거절의 멘트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건 어떨까? 어차피 사귄 것도 아니고 그가 고백을 한 것도 아니잖아? 나는 혼자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2주간 매일 연락을 하고, 곧 연애를 시작할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상황에 감정이입을 해본다. 완전히 썅년이잖아? 그렇다면 무난하게 거절멘트를 보낼 수도 있다. "오빠가 아주 좋은 사람인건 잘 알겠는데, 저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좋은 사람 만나세요." 그러면 그도 나에게 적당히 좋은 말을 해주면서 서로의 앞날을 응원해줄 것이다. 적당한 게 제일 낫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보내야지 마음을 먹는 순간, 나는 생각을 바꿔서 조금 솔직하게 문장을 고쳐보기로 했다. "오빠가 아주 좋은 사람인건 잘 알겠는데, 사실 제가 이번주에 진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오빠도 좋은 사람 만나세요" 눈을 질끈 감고 전송버튼을 눌렀다. 나는 이제 어장관리하며 간 보는 여자로 욕을 먹게 될까?


우리는 안 맞는 것 같다는 말. 사실 나도 몇 번이나 들어봤던 그 말은 사실 좀 아리송하다. 왜냐면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꽤 잘 맞는 다고 착각했고, 어쩌면 내가 더 노력해서 맞출 수 있지 않을까 반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들이 당연히 핑계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마지막 문장을 분석하면서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했다. 내가 무엇을 못 맞췄는지, 나의 실패를 얼마간 복기하면서. 어쩌면 홍콩남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왔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는 거절멘트를 읽고는 되려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간 연애가 잘 안 풀리면 도대체 이유가 뭔지 답답했었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니 아쉽지만 답답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그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고 오답노트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역시 솔직하게 마무리를 짓는 것이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거절 멘트 없이 노련하게 거절하는 편이 좋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거절을 하지도, 거절을 당하지도 않고 연애시대를 걷는 것이다. 거절의 역사는 이제 그만 멈춰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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